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웨스트민스터(27) 소요리문답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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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稱義)에 있어서의 이중전가(二重轉嫁)
칭의(稱義)에 있어서의 이중전가(二重轉嫁)

제 32 문 효력 있는 부르심 받은 자들에게 이생(生)에서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답 : 효력 있는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이생에서 의롭다 하심과(1) 양자로 삼 으심과(2) 거룩하게 하심을 얻고, 또 이생에서 이것과 더불어 받는 여러 가지 유익과 거기서 나오는 여러 가지 유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3)

(1)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2)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 1:5)
(3)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제 33 문 의롭다하심(칭의, 稱義)이 무엇입니까?

답 : 의롭다 하심은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은혜의 행위로써 그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4)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옳게 여겨 받아 주시는 것인데(5) 다만 그리스도의 의(義)를 우리에게 돌려주시고, 우리는 오 직 믿음으로 그 의(義)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6)

(4)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엡 1:7)
(5)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 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1. 의롭다하심(칭의, 稱義, Justification)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칭의, 稱義, Justification)’은 “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의로워 질 수 있는가?” 또 “율법을 거슬려 범죄 한 결과 죄책과 정죄에서 죄인이 어떻게 자유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의 답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칭의(稱義)를 이해하기 위해 재판장 앞에 서 있는 죄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모세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시비가 생겨서 재판을 청하거든, 재판장은 그들을 재판하여 의인은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죄할 것이며”(신 25:1)라고 했다. 이처럼 재판장은 다만 죄가 없는 자(의인 義人)라는 것을 선포만 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정죄할 때도 재판장은 죄인(罪人)이라고 선포만 할 뿐이다. 이처럼 칭의(稱義)란 일종의 법정 용어이며 선포이다. 즉 칭의(稱義)는 하나님이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 ‘하나님께 대한 죄가 없는 자’라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선언이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범죄 한 죄인들(롬 3:23) 인데 어떻게 하나님이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시는가? 대답은 하나님 자신이 죄인들을 의롭게 만드시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칭의(稱義)에 의해서 죄인들을 의롭게 만드신 후 또 성화(聖化)에 의해서 의롭다 하신 그들을 거룩하게 만드신다. 즉 칭의는 의롭다하심을 입은 죄인들이 아직 거룩하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이 가질 수 있는 완전한 의(義)를 값없이 죄인들에게 주시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떻게 죄인을 의인으로 만드시는가? 단지 죄 없는 의인이라는 선언만으로 되는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신다면 하나님의 공의는 사실상 무의미한 것이 된다. 하나님은 이중(二重) 전가(轉嫁, Imputation)를 통해서 죄인을 의인으로 만드신다. 전가(轉嫁)는 본래 다른 사람에게 속한 것을 하나님이 또 다른 어떤 사람에게 ‘옮겨 놓다, 계산하다, 간주하다’그런 뜻이다. 예를 들면 아담의 죄가 우리에게 전가되었다고 할 때 그 의미는 아담의 죄(그의 죄책과 정죄)가 그의 모든 후손에게 ‘담당(擔當)되었다, 옮겨졌다, 간주되었다’ 그런 뜻이다. 즉 우리는 이 전가(轉嫁)로 말미암아 아담으로부터 원죄(原罪)를 이어받게 되었다. 그러면 하나님이 죄인들을 의롭게 만드시는 이중 전가란 어떤 것인가?
2. 첫 번째 전가는 우리의 죄책과 죄(罪)가 주 예수 그리스도 에게 전가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罪)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義)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하나님이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의 죄를 담당하게 하심으로(전가), 그는 마치 죄를 범한 범죄자처럼 취급당하고, 죄 값으로 형벌을 받고, 대신 우리는 하나님에게 죄가 없는 자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는 말이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전가)시키셨도다.”(사 53:6) 이것이 첫 번째 전가이다.
3. 두 번째 전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義)가 우리에 전가 되 는 것이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義)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義)를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가(轉嫁)시키셨다. 그 결과 하나님은 우리를 전혀 범죄 하지 않은 죄가 하나도 없는 자로 여기신다. 마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처럼 그의 거룩한 율법을 전부 그리고 완전히 지킨 것으로 하나님이 인정하신다.

아래 그림을 보면 칭의(稱義)의 수여자는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다.“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롬 8:33) 더러운 옷과 같은 인간의 의는 인간을 의롭게 만들 수 없다. 우리를 의롭게 만드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다. 그리고 우리를 의롭게 하셨다고 선포(宣布)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이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을 잘 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신득의(以信得義, 믿음을 통하여 의롭다함을 얻음)란 말은 믿음이 우리를 의롭게 만든다는 뜻이 아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의 믿음이 선행(善行)으로 간주되어 그것 때문에 우리가 마치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순종한 것처럼 된다는 뜻이 아니다.

나는 이것을
하나님께 드릴 테야!

나는 이것을
예수님께 받을 테야!
인간의 죄로 얼룩진 예수님의 의(義)의 옷
더러운 옷(인간의 의)
이처럼 우리가 의롭게 되는 의(義)의 근거는 우리의 믿음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역만이 우리의 의(義)의 근거가 된다. 그러므로 누구나 구원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만을 믿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역에 대한 믿음 외에는 그 어떤 다른 것에 대한 믿음도 구원이 없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그 누구도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을 대신하여 죄를 담당한 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하나의 통로(通路)요 도구(道具)일 뿐이다. 다시 말해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받는 손과 같다. 우리가 하나님의 의(義)를 받는 것은 믿음에 의해서 받는다. 그러나 의의 근원(根源)은 믿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처럼 우리의 의(義)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우리 인간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지, 결코 인간이 하나님께 이루어 드리는 그 무엇이 아니다. 이러한 칭의(稱義)의 영광을 더 분명히 알기 위해서는 우리는 이제 특별한 진리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4. 하나님의 칭의(稱義, 죄 없는 자라는 판결)는 죄인을 단번에 의롭게 만든다.

인간이 점차적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다. 즉 칭의(稱義)란 점점 완성되어 가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칭의는 하나님이 죄인을 향하여 죄 없는 자라고 판결하며 선언하시는 순간 완성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땅 위에서 순종의 생애를 마치셨을 때, 자기의 선택된 백성을 위해 아버지께 완전한 의를 이루어 드린 사실에 근거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들의 죄를 대신하여 무서운 형벌을 받으셨을 때, 그들의 모든 죄를 위한 완전한 값을 치르셨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어떤 사람이 자기 죄를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을 때 하나님이 의롭다고 한 번 선언하시면, 그는 그 순간 이후로 영원히 하나님 앞에서 법적으로 의롭게 된다. 그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의 진노와 정죄에 처해 있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1,2)

5.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간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기까지는 결코 의로워 질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오래 전에 경건치 못한 자들을 위해 죽으셨으므로 하나님의 선택된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역이 끝난 그 순간에 회개하고 믿기도 전에 이미 의로워 졌다고 생각한다. 또 어떤 이들은 하나님이 창세전에 그들을 의롭게 하실 것을 이미 계획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영원부터 이미 의로워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 않다.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골 1:21,22)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이처럼 택함을 받은 자라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 계획의 집행에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이 우리의 칭의(稱義)를 위한 기초를 마련하신 것과 우리에게 구속을 적용시킴에 있어서 행하신 것 사이에는 구별이 있다는 말이다.

6. 칭의(稱義)에 있어서 믿음과 행위와의 관계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이것은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뜻이다. 우리가 의롭게 되기 위하여 회개(悔改)와 믿음(信仰) 외에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어떤 행위도 필요하지 않다. 즉 아무리 죄가 많은 사람이라도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그 즉시 의롭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 교리가 인간으로 하여금 죄 가운데 계속 머물도록 격려한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믿음과 행위에 대해 성경이 명백히 가르치는 것은 사람이 참으로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의롭게 되면, 그 순간부터 그는 또한 선을 행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 선행들은 믿음의 열매이다. 그것들은 칭의(稱義)의 결과로 나타난다. 언제나 사람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지만, 의롭게 하는 믿음은 결코 홀로가 아니라 행함이 따른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약 2:26)라고 말한 것은 이 이유 때문이다.

이처럼 이신득의(以信得義)의 교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참 교회와 타락한 교회의 구분조항이라고 까지 말한다. 만일 교회가 이 교리를 충실히 가르친다면, 그 교회에 불완전한 것들이 있다 할지라도 그 교회는 여전히 하나님이 보실 때 참된 교회라 불리 울 자격이 있다. 그러나 만약 이 교리를 충실하게 가르치지 않는 다면, 그 교회는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복음은 이 이신득의의 신앙에서 복음의 능력과 영광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글쓴 이(편저) / 정은표 목사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