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의 신비

유신진화론은 어떻게 기독교 복음을 파괴하는가?

유신진화론은 어떻게 기독교 복음을 파괴하는가?

유신진화론, “하나님은 진화를 창조의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다.”(우종학 서울대 교수)

시작하는 말

유신진화론(有神論的 進化論, Theistic Evolution) 자들은 창세기 1장-11장이 역사적(歷史的)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이 주장에 따르면 이런 논리적 서술을 할 수 있다.    

  • 창세기 1장-11장은 역사적(歷史的) 사실이 아니다.
  • 그러므로 아담과 이브도 실존(實存) 인물이 아니다.
  • 그렇기 때문에 원죄(原罪)도 실재가 아니며,
  •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죄(罪)를 대속(代贖)하기 위한 제물(祭物)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음과 부활도 필요하지 않다.
  • 그러면 예수님은 왜 이 땅에 오셨는가? 우리에게 인간으로써의 완벽한 삶의 모본(母本)을 보여주시기 위해 오셨다.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을 살면서 복음을 알고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100년 내내 최고의 고통과 고난 속에서 산다고 해도 그렇게 살다가 천국(天國)에 가는 것이 100년 내내 최고의 행복과 기쁨 속에서 살다가 지옥(地獄)에 가는 것보다 복되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창조’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創造)하셨다는 창세기 1:1말씀을 믿으면 아담과 하와가 실존 인물임을 믿게 되며 성경을 일관성(一貫性) 있게 믿게 된다. 그러므로 나는 성경대로 아담과 하와가 실존 인물이었고 그들은 하나님이 금(禁)하신 열매를 불순종하여 먹었으며 전(全) 지구적인 노아시대 홍수가 있었다고 믿는 소위 ‘젊은 지구론’ 자이다. 그리고 내가 이런 믿음을 갖게 된 이유는 그 모든 일을 하신 하나님이 성경에 그렇게 기록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주) ‘젊은 지구론’ : 젊은 지구 창조설론(Young Earth creationism, YEC), 창세기를 문자적으로 해석 지구의 나이는 6,000-12,000년이고 최초의 6일 동안 모든 만물의 창조가 이루어졌다고 믿는 성경적 창조론  

세상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창조에 대한 다양(多樣)한 믿음을 갖고 있지만 내가 주의 깊게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젊은 지구론’을 받아 들였을 때에만 신구약 성경의 모든 구절을 일관성 있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반면 이를 믿지 않는 ‘유신진화론’은 성경의 일관성 문제를 넘어 이단(異端) 교리와 같이 복음의 본질(本質)을 파괴(破壞)하는 자리로 우리를 끌고 간다. 이 글에서 나는 ‘유신진화론’이 어떻게 복음을 왜곡(歪曲)하고 더 나아가 복음을 파괴하는지 설명하고자 한다.

1. 유신진화론은 복음을 어떻게 파괴하는가?

1996년 무신론자(無神論者) 진들러(Frank R Zindler)는 ‘유신론 대(對) 무신론’이라는 주제를 놓고 기독교 변증론자 크레이그(William Lane Craig)와 논쟁(論爭) 중에 이런 말을 했다.

“생물학이 기독교에 준 가장 큰 충격은 생물학적(生物學的) 진화(進化)의 발견 입니다. 이제 우리는 아담과 이브가 실존 인물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으며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인 신화(神話)는 파괴 되었습니다. 만약 아담과 이브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면 원죄(原罪)란 있을 수 없고, 원죄가 실제가 아니라면 구원(救援)도 필요 없습니다. 구원이 필요 없다면 구원자 역시 필요가 없겠죠. 그러므로 저는 예수가 역사적인 인물이던 아니던 그를 백수건달(白手乾達) 같은 실업자(失業者)였다고 주장하며 따라서 진화론이 기독교에 종말을 고하게 만들었습니다.”1)

물론 지금까지 아무것도 결정적 증명(證明)이 되지 않은 진화론의 가설(假說)은 다 사실이 아니다. 만일 진화론이 사실이라면 진들러(Frank Zindler)의 말은 굉장히 설득력 있고 논리적인 주장이 될 것이다.    

오늘날 많은 ‘유신진화론’ 자들은 창세기 1장-11장을 실제 역사로 믿지 않으며 아담과 이브의 실존도 믿지 않는다. 그렇다면 당연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도 실제가 아니고 모든 인간의 죄(罪)가 아담을 통해서 들어왔다는 성경말씀도 거짓말이 되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창세기의 천지창조(天地創造)를 역사로 인정하지 않는 ‘유신진화론’은 인간의 원죄(原罪)를 부정한다. 한 ‘유신진화론’ 자의 책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원죄가 사회적으로 혹은 영적으로 전승되는 것이라면 아담이 모든 인류의 조상일 필요는 없다. 원죄는 대표성의 원리에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2)

이게 무슨 말일인가? 다른 ‘유신진화론’ 자들의 글을 통해서 이를  자세하게 알 수 있는데 ‘유신진화론’ 단체의 웹사이트에는 ‘대속과 진화론’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글이 게재되어 있다. 이 글을 쓴 사람은 벤가드(Joseph Bankard)라는 ‘유신진화론’을 지지하는 신학자인데 그의 글 내용 중 일부를 인용하면 이렇다.

“만약 대진화(macroevolution, 種 이상의 진화)가 사실이고 인간이 수억 년 간 자연선택의 산물이라면 많은 신학적 의문들이 생기게 된다. 무엇보다도 먼저 진화론에서 ‘타락교리’는 어떻게 되는가? 진화가 사실이라면 창세기의 역사성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중략) 만약 우리가 타락의 역사성을 부정하면 원죄교리 역시 의문이 들 수밖에 없고 대속(代贖)의 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역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만약 예수가 인류의 원죄(原罪)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이유는 그럼 무엇인가? 두 번째 아담 예수가 십자가에서 이루려고 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기독교의 대속교리는 예수의 죽음의 이유를 원죄로 보고 있는데 대진화는 기독교의 이런 타락과 원죄 교리에 의문을 갖게 하며 진화론은 대속교리에 심각한 도전을 제기하게 된다.”3)

2. 십자가 복음과 유신진화론은 공존할 수 없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죄(罪)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 달리셨으며 그는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이 기독교의 가장 핵심 진리이자 복음인데 ‘유신진화론’은 바로 기독교의 이 핵심 진리와 정면충돌(正面衝突)할 수밖에 없다.          

만일 진화론의 주장이 사실이며 맞는다면 성경이 말하는 십자가 복음은 거짓이 되고 십자가 복음이 맞는다면 진화론은 거짓이 된다. 그러므로 십자가 복음과 ‘유신진화론’은 동시에 사실(事實)일 수는 없게 된다. 이처럼 정말 기독교인이라면 성경과 모순되는 이 같은 진화론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3. 유신진화론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정한다.

뱅카드(Joseph Bankard)라는 사람은 기독교와 정반대의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이다. 그는 대속(代贖)의 교리 즉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담당했다는 교리를 버리고 ‘최고의 진화론 과학과 양립이 가능한 이론’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독교가 말하는 성육신의 이유는 무엇일까? 왜 하나님이 육신의 몸을 입고 팔레스타인 갈릴리 사람들과 함께 사셨을까? (중략) 기독교의 대속교리는 성육신의 이유가 십자가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즉 하나님이 인류의 죄를 위해 죽기 위한 이유만으로 나사렛 예수라는 사람이 되셨다는 것이다. 나는 성육신의 이 관점이 제한적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는 죽기 위해 사람이 된 게 아니다. 예수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 육신(肉身)을 입은 것이다. 나의 이러한 관점(觀點)이 기독교의 대속교리와 어떻게 다른가?

첫째, 성육신은 우선적으로 십자가에 대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죽이기 위해 보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예수님의 십자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중략) 나는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화가 난 군중들과 교만한 종교지도자과 비겁한 로마의 군사들이 완전히 무죄한 사람을 죽인 것이다. (중략) 

나는 하나님은 예수가 죽게 될 것을 미리 알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수의 죽음은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에 들어가 있지 않았다. (중략) 이런 나의 관점은 하나님의 권능을 보호하며 (즉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용서하실 수 있으시며 그는 피를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는) 또 선하심을 보호 한다.(즉 하나님은 십자가를 원하지 않으셨다.)”4)

이 말을 요약하면 ‘유신진화론’ 자 뱅카드(Joseph Bankard)는 하나님이 십자가를 계획하신 것이 아니며 예수님은 죽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도 아니고 우리에게 사람답게 똑바로 사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 왔는데 사람들이 사고로 예수님을 잡아 죽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성경적인? 이것은 비성경적인 것을 넘어 사악(邪惡)하기 그지없는 이단교리(異端敎理)이다. ‘유신진화론’은 이렇게 우리를 십자가 복음에서 떠나게 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지금 기독교 십자가의 복음을 능멸(凌蔑)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뱅카드(Joseph Bankard)의 이런 관점을 받아들이지 않는 ‘유신진화론’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유신진화론’ 신학자들의 글을 게재한 블로그(Blog)에 대해 나는 이렇게 비유적으로 말하고 싶다. 만일 여러분이 다니는 교회 블로그(Blog)에 ‘신천지의 이만희는 재림 예수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놓고 담임 목사님이 “여러분 저는 이 글에 100% 동의하지는 않지만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 보시고 받아들여도 좋을 것 같아 공유합니다.”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는가?

메시아 되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해야 한다는 것은  구약에서부터 신약에 이르기까지 말씀하고 있는 성경의 핵심 중의 핵심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 두렵고 고통스러워  이 잔을 피할 수 있으면 피하게 해달라고 간구하셨으나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시겠다고 고백하셨고,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종을 칼로 쳤을 때도 당장 열두 군단이 넘는 천사를 내게 보내시도록 할 수 없는 줄 아느냐고 하시며 저항을 포기하셨다.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하시더라.”(마 26:54)

어떤 사람은 ‘유신진화론’ 자들의 주장이 학자들의 다양한 주장과 논리 중 하나로 볼 수도 있지 않느냐고 생각할 지도 모르다. 그러나 기독교인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주류 ‘유신 진화론’의 논리는 필연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 죄를 대속하는 것과 관련이 없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논리대로 원죄(原罪)가 없다면 죄의 대속(代贖)이 왜 필요하겠는가?

4. 십자가 복음을 왜곡하는 유신진화론자들  

또 다른 ‘유신진화론’ 자 피터 엔즈(Peter Enns)는 교회가 진화론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에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성경과 신학에 대한 이해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칼빈대학교(Calvin College, Grand Rapids, Michigan)의 신학 교수이자 ‘유신진화론’ 자인 다니엘 할로(Daniel C. Harlow) 역시 그의 글 ‘진화과학의 연대 안에서 창세기 읽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원죄(原罪) 교리가 재(再) 정의(定義) 된다면 속죄(贖罪) 교리 역시 같은 방식으로 재고(再考)되어야 한다. 사탄에게 죄 값이 지불되었다는 이론이나 하나님의 영광에게 만족되게 지불되었다는 이론 대신 ‘그리스도의 승리’(Christus Victor) 모델이나 ‘그리스도의 도덕적인 영향’ 이론을 채택해야 한다. 바울의 구원론(救援論) 보다 더 나은 진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인류로 탄생에 대한 것으로 격상(格上)시켜야 한다. 새로운 피조물의 대표로써 변화를 입도록 선택되고 생명으로 건져져서 삼위 일체 하나님과의 교제를 하게 된…”5)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고 우리가 도덕적으로 완벽한 인류가 될 수 있도록 모범이 되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사도 바울이 외친 복음과는 상관없는 오히려 정반대의 교리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신 분이다.(롬 5:8) 그리고 우리는 그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된 것이지 예수님을 모델로 삼아 따라서 의롭게 살았기에 구원 얻은 것이 아니다.  

5. ‘젊은 지구론’을 믿어야만 구원 받는가?

가끔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한다. “꼭 ‘젊은 지구창조’(Young Earth creationism)를 믿어야만 천국에 가나요?” 아니다! 구원은 교회에 다녀서 얻는 것도 아니고 창조론을 믿어서 얻는 것도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믿고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는 모든 자들이 얻는 것이다.(요 3:16) 

구원은 이처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논리적으로는 ‘유신진화론’을 믿어도 천국에 갈 수 있고 6,000년이라는 ‘젊은 지구론’을 믿어도 지옥에 갈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유신진화론’을 받아들인 사람은  절대로 십자가의 온전한 복음을 받아들일 수도 믿을 수도 없다. 특히 성경에 대해 더 많이 알면 알수록 ‘진화론’과 ‘예수의 십자가’ 사이에는 더 큰 모순이 발생한다는 것을 인정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權威)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성경이 너무도 명확하게 전하는 십자가 복음의 원리를 결국 포기하고 예수님을 떠나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씀을 버리고 포기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공격 무기 즉 ‘성령의 검’이 없기에  사탄에게 사로 잡혀 결국 영벌의 길을 가게 될 수밖에 없다.

6. 찰스 다윈은 왜 하나님을 떠났는가?

이 같이 진화론 사상 때문에 하나님을 떠난 대표적 인물이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이다. 한 때는 신학공부를 하려고 했던 찰스 다윈은 하나님의 말씀 대신 진화론을 선택하고 믿음을 잃었다. 그는 성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29세)까지 점차적으로 바벨탑이나 징조로서의 무지개 등등 세상에 관해 구약성경에 나오는 역사가 명백히 거짓이라는 것과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이 복수심에 불타는 폭군(暴君)의 감정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으로부터 그것을 더 이상 힌두의 신성한 책 혹은 어떤 야만인(野蠻人)들의 믿음보다 더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6)  

그리고는 그는 죽기 얼마 전 기독교신앙에 대해 질문하는 자신의 변호사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성경을 신(神)의 계시라 믿지 않으며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도 믿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밖에 없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7)  그가 왜 구원을 얻지 못했는지 성경은 분명하게 말한다. 그 이유는 그가 말씀에서 더하거나 빼려고 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 22:18,19)

7. 하나님의 창조를 조롱하는 유신진화론 자들

성경기록 대로 하나님은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으며(창 1:1) 성경은 계속해서 그것이 비유가 아니라 사실임을 강조한다. “믿음을 통해 우리는 세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깨닫나니 그런즉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 보이는 것들로 만들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히 11:3)

그러나 ‘유신진화론’ 자들은 황당한 논리를 들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이 세상을 지으셨다는 사실을 극구(極口) 부정하려 한다. 어떤 ‘유신진화론’ 자는 그의 블로그에 이런 글을 계시했다. “하나님이 빛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다고? 그럼 하나님이 목소리가 있어서 소리를 만들어 냈다는 뜻인가? 그 목소리는 굵직한 남자 목소리였을까? 영어로 하셨을까? 히브리어로 하셨을까?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이 천지를 어떻게 창조하셨는지를 설명하지 않는다.”8)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이 이는 성경에 무지(無知)하며 말씀의 의미를 왜곡(歪曲)하는 말이 아닐 수 없는데 베드로 사도는 이런 주장들에 대해서 이렇게 대답한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하리니”(벧후 3:3,4)

마치는 말        

우리 신앙의 기준(基準)은 나의 지식(知識)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신뢰하는 것은 자신의 지식과 경험(經驗)이다. 우리의 지식과 경험은 가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지식과 경험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보다 우선(于先)하며 우위(優位)에 놓을 때 하나님의 대적(對敵)이 되는 것이다.

‘유신진화론’은 ‘십자가 복음’과 양립(兩立)할 수 없는 이론이며 모순을 인지(認知)하지 못한 채 예수님을 믿을 수는 있으나 결국은 필연적으로 둘 중 하나를 버려야 하는 이론이다. 나는 여러분이 ‘유신진화론’이 아니라 영생의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선택하기를 강권하며 위해 기도한다.(*) 출처 / 기독일보 la@christianitydaily.com Feb 09, 2017. (편집자 주) 이 글은 본지의 편집에 맞게 원문을 편집자가 임의로 보충 재편집한 것입니다.

   < 미주 >

1) Frank Zindler vs William Lane Craig, 토론, 무신론 vs 기독교, 증거는 어느 쪽을 가리키는가?, Willow Creek Community Church, 1993.06.27

2) 우종학,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3) Joseph Bankard, Substitutionary Atonement, and Evolution, Part 1, Biologos.org, 2015.06.09

4) Joseph Bankard, Substitutionary Atonement, and Evolution, Part 2, Biologos.org, 2015.06.10

5) Daniel C. Harlow, After Adam Reading Genesis in an Age of Evolutionary Science, 2010.09.03

6) Charles Darwin, The Autobiography of Charles Darwin, 1809~82

7) Charles Darwin, Letter to his lawyer, Francis McDermott, 1880.11.24

8) 우종학, 무크따 이야기 6번째, 소리로 빛을 창조하셨다고?, @ 별 아저씨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