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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은 무엇이 다른가?

이슬람은 무엇이 다른가?
기독교와 중요 교리 비교
이슬람은 2001년 911테러 사건과 더불어 21세기 시작을 테러와의 전쟁으로 장식함으로써 세계역사에 등장했다. 이제 이슬람은 더 이상 먼 중동의 종교만이 아니다. 오늘 한국에서도 중동 이슬람 국가와의 교역증진으로 이슬람의 각종 선교와 문화들이 우리 사회에 들어오고 있다. 서울대를 비롯하여 한국 대학가에 이슬람선교가 들어와 있고 우리 산업계에 이슬람 노동자들이 대거 들어오고 있다. 이제 이슬람을 보다 제대로 아는 것이 한국교회가 이슬람 세계선교 전략에 대비하는 일이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교리를 비교하는 데 있어 신론, 중보자, 계시론, 종교관, 구원론, 종말론을 비교하여 서로 다른 점을 밝히고자 한다.

1. 신론(神論)

(1) 달(月) 신 : 열조의 신

아브라함이 떠나온 갈대아 우르 지역은 난나(nanna)라는 달신(月神)이 지배하는 곳이었다. 일반적으로 태양은 남신이고 달신은 여신이지만 아라비아에서 달신은 남신이었다. 이슬람교는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아랍 지역의 달신인 석신(石神) 우상숭배에서 유래하였다. 그 가운데 알라(Allah)라는 신은 중동 사람들이 섬겼던 부족신들 내지 아랍의 지역 신들에서 유래하였다. 알라(Allah)는 메카(mecca)의 카바(Kaaba) 신전 안에 있던 360개 우상들 중의 하나였던 쿠라이쉬(Quraish) 종족의 신이다. 무함마드가 속한 쿠라이쉬 부족은 달(月) 신을 섬겼다.

그러므로 알라신은 여호와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단지 이 석신(石神)이 나중에 단일신론으로 발전한 과정에서 유대교와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음을 부인할 길이 없다. 이슬람의 세계관은 기독교 세계관과 다르다. 그것은 신관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슬람의 신관은 단일신관이며, 그 기원은 아라비아 지역의 달(月) 신이다. 이에 반해서 기독교의 신관은 삼위일체 신관이며, 그 기원은 아브라함과 열조의 신앙이다.

(2) 단일(單一) 신 : 삼위일체(三位一體) 신

이슬람의 신앙고백은 “알라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는 것이다. 알라는 창조자를 신의 아들이나 신의 영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알라와 그의 모든 천사들의 적(敵)이다.(sura 2:97,98; 5:73) 이슬람은 오직 단일하고, 유일한 신을 믿는다. 무함마드는 기독교의 삼위일체(三位一體) 신론 즉 하나님의 세 위격의 통일을 이렇게 부정했다. “셋이라고 말하지 말라. 그런 말을 그치라. 그것이 너희에게 더 좋을 것이다.”(sura 4:171) 이슬람은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천벌을 받을 신성 모독으로 여긴다. 이슬람에 의하면 알라는 항상 하나이고 둘이나 셋일 수가 없다. 무슬림은 알라를 인간으로부터 완전히 멀리 떨어진 초월적 존재로서 표상하기 때문에 알라를 아버지로서 이해할 수 없다. 더구나 아버지가 아들을 낳는다는 것은 초월적 존재인 알라에 대한 모독으로 여긴다.

(3) 군주적 신 : 사랑의 신

무슬림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법을 인격적으로 순종하는 기독교와 다르다. 무슬림은 알라에 대하여 율법적인 관계를 가지나 기독교인은 하나님에 대하여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격적인 관계를 가진다. 이슬람은 알라에 대한 완전한 믿음과 절대복종을 말하나 패역한 인간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독생자를 주시는 하나님의 대속의 사랑을 알지 못한다. 이슬람은 예수를 단지 ‘알라의 선지자’ ‘창조된 말씀’ 내지 ‘인간적으로 활동하는 알라의 창조된 영’으로 격하시켜 버리고 있다.

2. 중보자

(1) 이슬람에는 중보자가 없다.

그러나 기독교는 중보자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중보자이다. 그런데 이슬람의 종말론에는 무함마드가 내세에 중보자의 기능을 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이요 선지자에 불과한 무함마드가 어떤 근거로 어떻게 중보자 역할을 하는지 명료하지 않다. 그러나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가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배 피로 그의 생명을 우리를 위하여 쏟으셨으므로 우리의 중보자가 되셨다.

(2) 인간 무함마드 : 의인 예수

이슬람과 기독교의 차이는 이슬람 시조 인간 무함마드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차이다. 무함마드는 10명의 아내를 거느렸고 실수와 허물로 그 행위에 모순이 많은 인간이었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죄가 없으며 우리를 위한 대속 자가 되신 구세주이다. 무함마드는 무슬림에게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주었으나 예수는 구세주로서 그의 몸과 인격을 대속 제물로 우리에게 주셨다. 무함마드는 원수를 증오하고 보복하고 살해하려고 가르치나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하고 보복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라고 가르친다. 여기서 우리는 이슬람의 윤리보다 차원 높은 기독교의 윤리의 우월성을 발견한다.

(3) 이슬람의 예수에 대한 중요한 역사적 사실 왜곡

– 예수는 신이 아니라 예언자라는 것이다. 이슬람은 예수를 무함마드 를 포함한 25명의 예언자들(아담, 노아, 모세, 예수 등) 중 하나로 보며 그 중 무함마드는 ‘최종 최고의 예언자’라고 주장한다.

– 예수는 하나님 아들이 아니라고 코란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마리아 아들을 메시아라 칭하니 그들은 분명 불신자들이다.”(sura 5:72)
–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예수가 아니라 다른 사람 유다였다고 말한 다. 이것은 영지주의자들의 견해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3. 계시론

무함마드는 40세 때인 610년 라마단 때에 당시의 종교적 유행에 따라 메카(Mecca)에서 5km 떨어진 광야에 있는 히라 산 동굴(Cave Hira)에 들어가 기도하였다. 그때 그는 동굴 안에서 시끄러운 종소리와 같은 굉음의 환청(幻聽)을 경험하고 한 영(靈)을 보게 되었다. 그는 술 취한 사람처럼 바닥에 쓰러져 진땀을 흘리고 낙타새끼 같이 부르짖었다. 무함마드는 이 방문자를 신령(神靈, jinn)으로 생각했다. 무함마드가 본 신령이란 당시 유행했고 아랍인들이 이미 토속적으로 섬겨왔던 강신술(降神術)이나 주물숭배(fetishism)의 영(靈)이었을 것이다.

무함마드의 초기 계시에는 계시자의 이름은 밝혀지지 않고 다만 ‘무명의 영’(jinn)이라 칭했다. 무함마드는 622년 하지라 이후에 이 무명의 영(靈)을 구약 성경의 가브리엘과 동일시하고 있다. 이것은 무함마드가 메디아에서 만난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무함마드는 자기에게 계시를 가져다 준 가브리엘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천사였으며 그 천사를 보낸 자는 아라비아의 지고의 신(至高神) 알라(Allah)라고 칭함으로써 외형은 유대교적 모습을 지니고 있다.

4. 율법 : 은혜

이슬람은 무함마드의 꾸란 이외 모세의 율법서, 다윗의 시편, 복음서를 받아들인다. 그렇기 때문에 이슬람은 유대교 및 기독교를 모방한 종교라고 볼 수 있으며 그래서 유대교와 기독교와의 공통점이 많은 종교다. 그러나 이슬람은 사리아(sharia) 법아래 있는 율법의 종교이며 하나님의 은혜에 기초한 종교가 아니다. 이슬람이란 알라(Allah)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고 알라의 명령에 따라서만 행동함을 말한다. 무슬림은 이슬람 교리에 절대 순종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5. 구원론

이슬람은 선행을 통한 자력 구원을 믿는다. 꾸란에 의하면 알라(Allah)의 심판에서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의 대리가 될 수 없다.(sura 6:154) 꾸란은 모든 사람이 자신이 알라(Allah)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꾸란은 대속과 속죄를 위한 희생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다. 이것은 꾸란의 신관(神觀)에서 나온다. 알라(Allah)는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 중보자나 피의 희생이나 어린 양이나 대속 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무슬림은 스스로 옳게 여기고 그들의 의(義)를 스스로 쌓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선행만이 그들의 악행을 제거해준다.(sura 11:114) 무슬림은 율법적인 요구를 완성하면 구원에 이른다고 생각한다.(sura 29:9) 이슬람은 알라와 그의 선지자에 대한 신앙고백조차도 선행으로 간주한다.

6. 종말론

꾸란에 의하면 이슬람 낙원은 황금으로 가득 찼고 눈을 아래로 깔고 커다란 눈을 가진 아리따운 순결한 여자로 가득 차 있다.(sura 37:49,50) 그중 청순한 복수의 여자들과 가정을 이루고 성(性)을 즐긴다.(sura 44:51-55, 52:20, 55:72-76, 56:28-37) 그러나 자녀에 대한 언급은 없다. 이것은 낙원이 쾌락의 극치를 추구하는 곳임을 나타낸다. 이러한 이슬람의 종말관은 기독교의 종말관을 왜곡하고 있으며 신약성경의 종말 메시지에 모순되고 있다. 이슬람의 낙원은 순결한 처녀와 소년들과 결혼하는 물리적 행복을 말하고 있으나, 기독교의 천국은 장가가거나 시집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열락(悅樂)하고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하는 복이다.

맺는 말

교리적인 면에서 비교해 보면 기독교와 이슬람은 전혀 다른 타종교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같은 여호와와 하나님을 섬기나 이슬람은 전혀 다른 신인 알라(Allah)를 그들의 하나님으로 믿는다. 중보자, 계시론, 구원론, 종말론도 다르다. 그러므로 기독교와 이슬람 양자의 대화와 협력은 이같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각 종교의 고유한 정체성의 기반 위에서 수행되어야만 한다.(*) 출처 / 한국복음주의협회 2015년 10월 발표회 발제문, 발표자 / 김영한 교수(숭실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