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교회 규범’을 통해 보는 목사는 누구의 감독을 받는가
‘제네바교회 규범’을 통해 보는 목사는 누구의 감독을 받는가
– 목사는 누구에게 교리와 생활에 대한 관리 감독을 받는가?-

시작하는 말
오늘날 한국 교회 목회자들의 다양한 추문이 일상화가 된 느낌이다.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한 목사의 ‘그루밍’(Grooming, 길들이기) 성범죄는 한국 교회의 막장을 보는 듯 큰 자괴감이 들게 했다. 한국 교회에서 목사들을 관리 감독하는 치리(治理) 기능은 이미 옛 유물이 되었다. 노회(synod)의 본래 기능이 목사들을 관리 감독하는 것인데 공교회 시스템이 무너진 오늘 한국 교회에서 그것은 이제 하나의 이상(理想)일 뿐이다.
한국 목사들은 안수만 받으면 더 이상 어느 누구의 통제나 간섭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사회적 사법처리(司法處理)가 되지 않는 한 어떤 통제도 할 수 없는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개 교회의 교황(敎皇)으로 둔갑하는 목사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목사는 누구에게 교리와 생활에 대한 관리 감독을 받는가?”라는 질문은 매우 낯설게 느껴지나 이는 반드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이다.
칼빈의 제네바교회 모범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16세기 종교개혁 당시 목사들의 건전성( 健全性)을 확보를 위해 힘썼던 제네바교회를 우리는 의식적으로 떠올려야 한다. 스트라스부르그에 머물며 프랑스 피난민교회를 섬기던 칼빈은 1541년 9월 13일 제네바시로 다시 돌아올 때 시(市) 의회(議會)에 두 가지 조건을 요구했다.
- 교회 교리교육 도입을 허락할 것
- 교회 치리권을 인정할 것(당시 교회 치리권이 시 의회에 있었음)
칼빈은 제네바시로 다시 돌아온 즉시 ‘제네바교회 규범’(1541년)과 ‘제네바교회 신앙교육서’(1542년)를 작성했다. 칼빈은 마틴 부처(Martin Bucher)의 영향을 받았을 뿐 아니라 프랑스 피난민교회를 섬기면서 목회적으로 경험했던 ‘교리와 치리의 유기적인 결합’을 제네바교회에서 실현하려는 목적을 가졌기 때문이다.
• 교리(敎理)는 그 도시에서 사는 신자이면서도 동시에 시민인 모든 사람에게 언약의 백성으로서 그리스도의 제자 됨에 이르게 하는 교회의 가르침이었고, • 치리(治理)는 처벌 자체가 목적이 아닌 이 언약의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한 교회의 목회적인 수단이었다.
특히 제네바시에서 이런 ‘신앙의 가치’가 이상적(理想的)으로 정착되기 위해 가장 먼저 준비되어야 했던 대상은 바로 교회 목사들이었다. 이런 칼빈의 의도가 ‘제네바교회 규범’에 잘 담겨있다. 칼빈은 주님께서 자신의 말씀으로 보이시고 가르치신 대로 영적 통치 규범이 제네바에서 실현되는 것을 기대했다. 이 ‘제네바교회 규범’에서 가장 주목할 내용은 목사직에 관한 것이다. 매우 엄중한 분위기에서 목사의 선발뿐 아니라 목사가 된 이후의 관리 감독에 대한 것이 구체적으로 명기되었다.
칼빈은 목사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자신들의 직무를 책임 있게 감당하도록 ‘그 목사들을 붙들어 둘 공공질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제네바 목사들 사이에 교리적인 순수함과 일치를 이루기 위해 그리고 그들 생활의 모든 추문을 피하며 모범을 보이는 삶을 위해서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관리 감독 장치를 도입했다.
첫째, 모든 목사에게 매주 금요일 의무적으로 ‘교리와 성경연구’ 모임에 참석하게 했다. 신앙의 일치를 이루며 또 신학적인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교리와 성경해석’을 연구하고 토론하도록 한 것이다.
둘째, 목사들의 경건 생활을 위해 목사직이 파면되는 ‘용서될 수 없는 죄들’과 형제애의 권면으로 ‘용서될 수 있는 죄들’과 관련된 윤리적인 교정형식을 마련했다.
▸ 용서될 수 없는 죄 : 이단, 분리, 교회 질서에 대한 반항, 공적인 처벌을 받을 만한 신성모독. 성직 매매와 타락한 뇌물, 다른 목사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음모, 적법한 허락과 진실 된 소명 없이 자신의 교회를 떠나는 것, 사기, 위증, 간음, 절도, 술 취함, 법적인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싸움, 고리대금, 법에 금지되고 추문을 일으킬 수 있는 놀이, 춤이나 그와 유사한 풍기문란, 시민질서를 무너뜨리는 위법행위, 교회를 분리시키는 악행
▸ 용서될 수 있는 죄 : 성경을 이상하게 해석하여 분란을 일으키는 것, 헛된 문제들에 호기심을 갖는 것, 교회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행동이나 교리를 제기하는 것, 성경연구와 성경읽는 일에 태만한 것, 아첨과 관련된 행동을 꾸짖는 일에 태만한 것, 주어진 직무를 게을리하는 것, 저속한 익살, 거짓말, 명예훼손, 음담패설, 욕설. 경솔함, 나쁜 간책, 탐욕과 인색함, 상식을 벗어난 분노, 소란과 싸움, 복장과 행동 그 밖의 면에서 목사답지 않은 방종,
셋째, 모든 목사가 3개월마다 자기 점검과 서로를 살피는 견책(譴責) 시간을 갖도록 했다. 목사들이 모범을 보이지 않으면 교회가 바르게 설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에 ‘제네바교회 규범’에서 목사의 역할을 가장 중요하게 다루었다. 그래서 목사가 되는 과정뿐 아니라 목사가 된 이후에도 신앙과 삶의 모범이 유지되도록 하는데 깊은 관심을 가진 것이다. 결론 : 한국 교회는 공적으로 목사들을 관리 감독하는 기능이 회복되어야 한다. 목사들은 스스로 교리와 생활의 건전성을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 로마 가톨릭교회만 타락하는 것 아니다. 목사가 바로 서지 못하면 그 어떤 교회도 타락할 수 있다. 그 때문에 교회 타락의 중심에는 항상 목사들이 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목사들은 어떤 제도적인 장치가 없어도 스스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관리 감독 아래 있다는 사실을 결코 망각하지 않는다.(*) 글쓴 이 / 박상봉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역사신학) 출처 / ‘합신은 말한다’ vol. 33-4. pp.2,3 * 본 글은 편집상 요약 된 글임(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