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의 신비

진화론이 교회에 미친 영향

진화론이 교회에 미친 영향

  시작하는 말

서유럽 교회들이 쇠퇴한 이유는 무엇일까? 유럽에 이어 미국의 교회들이 점차 고령화되어 가고 많은 교회들이 비어 가는 이유와 진화론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한국의 교회들도 이미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선지 오래다. 많은 요인들이 있겠지만 그 중요한 요인 중 하나를  진화론에서 찾아보려는 것이 바로 이 글의 목적이다.

  영국의 기독교인 수는 계속 감소하여,  1980년과 2000년 사이에 무려 27%나 감소했다. 이 같은 감소율에 대한 원인을  알기 위해 2003,2004년 한 조사가 실시되었다. 모두 14,000명의 영국과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그들이 왜 교회 다니는 것을 포기했는지에 대한 광범위한 서술형 설문을 조사를 했다. 놀랍게도 91%의 사람들이 교회에 실망하게 된 것에 대해서 매우 비슷한 이유를 제시했다.

  • 첫째 이유 : “교회는 왜 우리가 성경을 믿는지 그 이유에 대해 분명한 답을 주지 못한다.”

신자들은 신앙에 대한 비판자들의 공격에 대해 교회가 분명히 대답해주고 성경의 권위를 지지하는 증거들로 그들의 믿음을 방어해 주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많은 교회의 지도자들은 성경에 대한 신자들의 믿음을 파괴하는 ‘진화론 역사관’과 타협하고 성경의 권위를 변증하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공산주의 치하에서 신앙으로 인해 핍박을 받고 미국으로 망명한 조셉 톤(Joseph Ton)이라는 루마니아 목사는 1982년 4월 15일 목요일자 호주의 크리스천신문 ‘New Life’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서유럽의 기독교가 파괴된 것에는 두 가지의 요소가 있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그 중 하나는 ‘진화론’이고 다른 하나는 ‘자유주의신학’이다. 자유주의 이론은 성경과 우리의 신앙에 진화론을 접목시킨 바로 그것이다.” 구체적으로 진화론이 신학에 미친 영향은 뒤에 다룰 것이다.          

  • 둘째 이유 : “교회는 하나님과 도덕적 생활의 거룩함을 가르치지 않는 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신자들의 좌절감에 무관심하다.”

응답자의 많은 수가 영국 국교회에서 동성애자를 성직자로 임명한 것에 대해 몹시 슬퍼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성애의 근원인 진화론처럼  만물 창조(creation)에 대한 창세기의 기록이 부정된다면 하나님이 정하신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도 거부될 수 있고 남자와 남자가 결혼하는 것도 가능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처럼 진화론처럼 창세기의 말씀이 거부된다면 분명히 동성애를 금한 다른 성경 말씀들도(창 19장, 레 18:22, 롬 1:26–27, 고전 6:9, 딤전 1:10) 거부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호주에서의 연구도, 교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도 성경의 진리와 도덕적 기준들이 매우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불신자인 뉴스 해설가인 앤드류 볼트(Andrew Bolt)까지도 높은 낙태율에 대해 개탄하며 누구보다도 교회 지도자들이 생명의 고귀함과 같은 윤리적인 이슈들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옹호해 주기를 요청했다.

미국에서도 사람들이 자유주의 신학에 감염된 주류 교단의 교회들을 떠나고 있다. 이처럼 자유주의 교회는 죽어가고 있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보수주의 교회는 성장하고 있다. 분명히 성경의 권위를 세우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창조의 메시지는 교회의 성장과 쇠락(衰落)에 있어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만약 교회 지도자들이 진화론에 물든 자유주의 신학자들처럼 창세기 1:1부터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성경의 진실성에 대한 교육을 강조하지 않는다면 교회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점점 더 증가할 것이고 마침내 그들은 교회를 떠나가게 될 것이다.

또 서방 세계로부터 중국에 유입된 자유주의 신학과 철학은 기독교에 대한 중국인의 신앙을 좀먹었다. 중국 주류 개신교 교파들이 진화론을 묵인하고 성경의 초자연성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감리교, 장로교 그리고 침례교가 특히 타격을 받았다. 영국의 러셀(Bertrand Russel, 1872-1970)은 무신론과 사회주의를 역설했다. 그의 파괴적인 저서들은 정통 기독교 교리를 훼손했다. 그 결과 정통 복음주의 선교사들의 가르침을 받던 중국의 지식인층들은 마르크스주의의 등장에 취약한 체질이 되고 말았다.(‘By Their Blood-Christian Martyrs of the 20th Century’ 49-50p, J. and M. Helfi) 이처럼 진화론은 교회와 사회를 계속 파괴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실에 눈을 크게 떠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지 도덕적 영적 문제들만이 아니다. 역사, 고고학, 과학 등 모든 학문에 최종적인 권위(權威)가 되어야 한다. 인류의 역사가 수십억 년이라고 주장하는 진화론의 인류 연대기와 세계관을 교회가 묵인하고 받아들인다면 동시에 교회는 ‘성경의 권위, 하나님의 속성, 죄와 사망에 대한 가르침, 복음의 능력’ 등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진화론의 주장대로 창세기의 극히 일부라 할지라도 진정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면 구원과 성도의 삶에 대한 교리를 포함한 성경의 나머지 부분들 또한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이 진화론이 교회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진화론이 먼저 과학계를 지배한 후 과학의 이름으로 교육계를 지배함으로 그 영향력을 교회에까지 확대해 가는 과정을 살펴보자.

I. 진화론이 교육에 미친 영향

청교도의 신앙으로 성경에 기초해 출발한 미국이 이제는 각 주마다 공공장소에 설치 된 십계명 돌 판을 철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도려내고 있다. 미국 텍사스 주와 켄터키 주 법원이 십계명에 대한 엇갈린 판결을 내림에 따라 연방대법원은 공공장소에 십계명 설치가 위헌인지 아닌지의 여부를 심의했다. 그 결과 연방대법원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고 미국의 모든 공공건물에서 십계명 돌 판이 철거됐다.  

발단은 자유인권연맹(ACLU)의 변호사 프리드맨(David Friedman)이 공공장소나 정부건물에 십계명을 설치하는 것이 특정 종교를 장려하는 행위로 위헌이라고 주장한 것이었다. 대법원의 판결 여파는 종교와 국가의 분리원칙에 대한 새로운 전기가 되었고 교계에 큰 파장이 일어났다. 즉 재판에는 ‘십계명 돌비 전시’를 다루었지만 이에 따른 여파는 1)국기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는 국기서약 ‘하나님 아래’(under God)의 위헌 여부, 2)국공립학교 음악회에 사용하는 종교음악에 대한 관례, 3)대법원 청사에 있는 모세의 십계명 벽화를 비롯한 각종 그림, 4)정부 청사와 법원을 장식하는 기념비 및 동상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이 미쳤다.

1925년 스코프 재판(John Scopes Trial)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성경 특히 창세기 1장의 6일 창조가 세상 도마 위에 올려졌다. 당시만 해도 미국 국공립학교는 만물 기원에 대해 성경의 창조론만 용납되었다. 유럽을 휩쓸던 유물론 진화론은 미국학교에서 금지되어 있었다.

그런데 스코프라는 교사가 학급에서 창조론 외에 진화론을 학생들에게 가르침으로써 학교 측 제소로 시작된 재판이었다. 스코프 재판은  학교 측 승리로 끝났지만 자유인권연맹의 대로우(Clarence Darrow 1857-1938) 변호사를 비롯한 진화론자들은 이 재판을 적극적으로 악용하기 시작했다. 크리스천 대표로 학교 측 변호사였던 브라이언(William J Bryan 1860- 1925)의 답변 가운데 비성경적 답변들(상대 변호사의 여러 질문에 대하여 성경의 6일 창조를 말씀 그대로 믿지 않는 등 비성경적이고 진화론적인 답변들이 많았다.)을 지적하며 모든 미디어는 이를 선동적으로 확대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 후 1960년에는 이 재판을 바탕으로 한 ‘바람의 상속자’(Inherit the wind)라는 영화까지 만들어 그리스도인들은 천지창조라는 비과학적인 것을 믿는 무지한 광신자(狂信者)들로 조롱했다. 그리고 다른 한 편으로는 진화론은 과학이라고 선전하여 세상 이목을 바꾸는 기회로 삼았다.  

이런 와중에 열린 일명 원숭이 재판(Monkey Trial)으로 알려진 스코프 재판은 복음적이던 미국을 진화론으로 눈을 돌리게 하는 역사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그 후 미국은 성경의 권위를 급격히 잃어가게 되었고 반면 진화론자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1962-63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미국의 공립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기도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이어 연방대법원은 1980년 십계명을 공립학교에 계시하는 것조차 금지했다.

또 1998년에는 워싱턴 주 베링톤고교 디하트(Roger Dehart) 교사는 생물시간에 유전인자와 유전정보(DNA)를 가르치면서 진화론의 한계를 지적하고 성경적인 지적설계(Intelligent Design)을 소개하자 특정 종교를 가르쳤다는 이유로 즉시 학교 측이 제재했고 동시에 미국 자유인권연맹 변호사들의 제소(提訴) 압력으로 그는 결국 학교를 떠나야 했다. 이는 오늘 날 미국 교육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건으로 약 80년 만에 미국 공교육의 바탕이 성경에서 진화론으로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이렇게 무너져가는 미국 기독교를 보며 1962년 회개와 각성을 촉구하는 크리스천 과학자들의 모임이 있었다. 세상의 잘못된 지식에 세뇌되어 하나님 말씀인 성경 특히 창세기 말씀이 비(非) 과학적이라고 외면하는 현실 속에서 인본주의 철학과 진화론이야말로 비(非) 과학적이며 허위임을 폭로하고 성경말씀은 첫 말씀부터 변치 않는 진리임을 증거 하는 창조과학 사역(Creation Research Society, CRS)이 태동된 것이다.

미국은 왜 진화론의 종주국 영국을 답습하고 있는가? 성경을 외면하는 이 같은 인본주의 물질주의 진화론 교육이 계속된다면 이 나라와 후손들 장래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믿음의 눈으로 볼 때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성경을 떠난 교육이 시작 된 후 50여 년이 지난 지금의 미국은 끊임없이 계속 되는 학원 총기사건, 마약과 폭력, 자살, 낙태, 동성애, 가정파괴, 인종차별 등 각종 범죄가  판을 치며 매일 비극적인 사건들로 넘치고 있다. 이 같은 사회악은 유물론(唯物論) 진화론 사상이 낳은 당연한 귀결 아닌가!

1962년 미국 연방대법원이 십계명 계시에 대한 위헌판결을 내린 이후 진화론자들은 순풍에 돛단 듯 승승장구하여 진화론자들의 주장은 날이 갈수록 더욱 거세지고 복음주의 입지는 점차 약해지고 있다. 세상 학교는 각 과목마다 만물 기원 문제를 진화론으로 더욱 기세 높게 세뇌시키는데 비해 대다수의 교회는 아예 관심조차 없고 외면하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오늘날 많은 크리스천 리더들이 지질학, 생물학, 천문학 등에서 말하는 수백만 년 수억 년의 진화론을 과학이라 믿고 있다. 그리고 성경의 6일 창조론을 타협하거나 변개하는 것을 볼 때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 물려줄 것은 올바른 믿음이다. 특히 삶의 바탕이 무너진 이 시대에 확실한 증거를 통한 견고한 믿음이 우리가 후대에 물려주어야 할 유산이다. 성경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중략)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신 6:6,7, 11:19, 32:46)고 명하고 있다.    

미국 공립학교를 위한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는 한 일반 방송회사가 성인들을 상대로 이런 설문조사를 했다. “당신은 수업시간에 어떤 이론이 가르쳐져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선택 항목은 ‘창조론’, ‘진화론’, ‘창조론과 진화론 둘 다’였다. 이에 대해 52%가 창조론과 진화론 둘 다 가르쳐야 한다고 응답했고 31%가 창조론 단지 17%가 진화론이라고 응답했다.    33

2000년 3월에 보고 된 자유주의 단체 ‘People For the American Way’가 조사한 전국 여론조사에서는 79%의 미국인들이 창조론이 공립학교에서 어떤 형태로든 가르쳐져야 한다고 응답했다. 1982년부터 2001년까지 실시된 일련의 갤럽조사도 유사한 결과를 보였다. 또 같은 여론조사에서 미국인 반수가 인간이 창조 된 것은 1만년 이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35-40%의 사람들은 인간은 수백만 년에 걸쳐 하등한 동물로부터 진화되었는데 그 과정을 하나님이 이끌었다고(유신론적 진화론) 믿고 있었다. 그리고 11%의 미국인들만이 인간의 기원에 대해 신(神)이 어떠한 역할도 하지 않았다는 진화론의 견해를 갖고 있었다.

결론은 대다수의 미국 공립학교의 과학 교사나 미국 불신 과학자들의 생각과 달리 다수의 미국인들은 진화론이 가지고 있는 심각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었고 학생들에게는 진화론에 반대되는 견해인 창조론도 함께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미국인 대다수가 가르쳐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중대한 문제를 실제로는 소수의 사람들이 결정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AIG의 회장인 켄 햄(Ken Ham)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첫째, 인본주의 엘리트들은 교육시스템에 의해서 통제되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대중화된 통념은 그들의 생각과 주장에 달려있다.

둘째, 대중들은 이들 엘리트들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는 믿음을 가질 수 없도록 그릇되게 세뇌되고 있으며 대안적인 견해를 토론하지 못 하도록 압력을 받고 있다.

셋째, 교회에 출석하는 많은 신자들은 이 주제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들어보거나 생각해본 적이 없으며 그래서 그들은 이 주제가 얼마나 기독교의 기초에 중요한 문제인지 얼마나 전체 사회에 악영향을 주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넷째, 교육시스템을 통해 진화론은 과학이고 창조론은 종교라고 배운 여러 세대들은 진화론 문제의 본질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다.

진화론 일색의 교육 영향은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몇 년 전 대학생을 대상으로 만물의 기원에 대한 설문을 조사한 적이 있었는데 기독학생 중 70% 정도가 창조론에 확신이 없었으며 오히려 진화론이 과학적 증거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놀라운 결과를 얻은 적이 있다.

사람들의 이런 세계관의 변화는 하루아침에 오는 것이 아니다. 이메일을 주고받는 사이에 컴퓨터가 조금씩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처음에는 속도가 조금씩 떨어지다가 마침내 컴퓨터가 다운되듯이 오늘날의 사회적 현상은 진화론에 대한 오랜  공교육이 가져온 결과이다.

창세기 1:1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다. 또 6일 간에 천지와 모든 생물을 ‘종류대로’ 창조했음을 선포하고 있다. 그러나 진화론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이 무기물(無機物)에서 자연 발생되어 출현한 최초의 원시생물에서 진화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창조론에 대한 확고한 신앙이 없이는 10년 이상의 공교육을 통한 진화론 교육이 많은 기독학생들에게 성경의 권위를 의심하게 하고 결국 신앙이 성장하지 못하게 하는 큰 장애가 되고 있다.

실제로 많은 젊은이들이 대학시절에 교회를 떠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고등학교까지는 부모님의 강권에 못 이겨 교회를 출석하고 자연히 창조에 관해 들어왔지만 학교 교육을 통해 진화론만이 과학적 정설(正說)로 꾸준히 강요되면서 자연스럽게 진화론으로 세뇌되기 때문이다.

또 일부 사람들은 창세기의 기록을 하나의 창조 신화(神話)로 간주한다. 창조가 기독교만의 특징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 바벨론이나  중국의 신화에도 비슷한 창조이야기가 있음을 예로 들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유’(有)에서 ‘유’(有)를 만들어낸 설화(說話)들로 인간의 생각으로부터 유추(類推)된 것이다. 그러나 창세기에서 말씀하고 있는 창조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것으로 인간의 경험과 논리를 초월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창조임을 확신해야 한다.

성경이 비과학적인 책으로 오해 받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성경이 과학에 비교해 뒤진 것도 과학이 성경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도 아니라 오늘날 진화론 일색의 교육이 사람들을 세뇌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무기물(無機物)에서 우연한 충돌에 의해 유기물(有機物)이 생기고 여기서 최초의 생명체가 우연히 탄생했다는 화학 진화론의 생명 기원(起源)과 인간과 모든 생물은 이 최초의 한 생명체에서 진화되어 나온 것에 불과하다는 생물학 진화론이 그 원인이다.    

진화론의 생명기원으로 보면 결국 인간은 그 기원에 있어 다른 동물과 조금도 다른 게 없으며 궁극적으로 인간 역시 무생물(無生物)에서부터 생겨난 우연의 산물일 뿐이다. 인간론에 대한 이런 사상은 칼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와 같은 유물론 사상을 낳게 했다. 그러므로 그들 눈에는 인간도 그냥 한 덩어리 물질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세계관에는 인간의 도덕과 윤리와 영적인 세계를 기대할 수 없다. 불신자의 91%가 인간과 동물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설문결과가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창조과학연구소 논문집, 이웅상/이형복) 

인간(人間)이 우연히 무기물에서 발생된 단세포 생물이 오랜 세월 진화를 통해 된 것이라면 죽어 흙으로 돌아가면 그것으로 끝이다. 이런 진화론 교육을 강요당한 지성인들에게 창조자 하나님은 하나의 우스운 전설(傳說)로 밖에 들리지 않게 된 것이다. 이렇게 철저히 유물론적 세계관에 세뇌된 사람들에게 영적인 세계란 하나의 허황된 꿈과 같은 황당한 얘기일 뿐이며 영원한 세계를 갈망할 필요도 없게 된다.    

그뿐 아니라 진화론은 이미 신앙을 가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신앙성장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 믿음으로 신앙이 시작된 후에도 ‘창조냐 진화냐’하는 이 문제가 분명히 해결되지 않으면 늘 방황하기 쉽다.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대학시절에 신앙을 떠나는지 모른다. 어려서는 부모님을 따라 교회를 다니면서 자연히 창조에 관해 들어왔지만 학교교육을 통해서는 진화론만이 과학적 정설로 꾸준히 강요되면서 그들은 자연스럽게 진화론으로 세뇌되고 만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진화론은 과학적 증거가 있지만 성경은 과학적으로 많은 오류가 있는 것으로 생각이 변하게 된다. 이런 상태로 대학에 들어가면서 한꺼번에 밀려오는 너무 많은 이론과 생각의 자유 속에 학교 교육에 의해 끊임없이 비과학적이라고 비판되어 온 창조론을 포기하기에 이르게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로 여겨진다.    

II. 진화론이 신학에 미친 영향(유신진화론)

Julius Wellhausen

창세기에 대한 파괴 작업은 ‘고등비평’(higher  critic)으로 유명한 벨하우젠(Julius Wellhausen, 1844–1918)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기독교 신앙에 원시적인 다신교(多神敎)로부터 성경을 믿는 일신교가 생겨났다는 진화론적인  인류역사관을 적용했다. 벨하우젠은 모세오경을 모세에 의해 기록되지 않았고 후에 확인되지 않는 유대 랍비들에 의해 기록된 것으로 주장했는데 오늘날은 이를 대표적 신학이론으로 믿고 있다. 이후 자유주의신학은 진화론을 그대로 성경해석에 도입하여 유신진화론(有神進化論, Theistic Evolution)을 확립하였다.

유신진화론은 그 단어가 말하듯이 “하나님이 천지를 진화론적으로 창조하셨다.”는 주장이다. 이는 창조주를 믿으면서 동시에 진화론도 수용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이론은 창조의 주체(主體)를 하나님으로 설정한 것만 제외한다면 내용적으로는 거의 다 진화론적이다. 예컨대 우주만물의 진화적 형성, 진화에 필요한 긴 지질연대의 설정, 각 지질연대에 부응하는 지층과 화석의 점진적인 형성, 유인원으로부터 인간의 진화 등이 그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유신진화론의 범주에 우주만물의 진화를 주장하는 ‘진행적 창조론’을 비롯하여 비록 진화 자체를 직접 주장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긴 지질연대를 내세우는 ‘날-연대설’과 ‘간격설’ 그리고 창세기를 비유나 신화로 폄하하는 ‘골격 가설’ 등을 포함시켜 비판적으로 기술하고자 한다. 이런 이론들을 유신진화론 범주에서 제외한다면 유신진화론의 실체는 거의 남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또 전통적인 복음에 위협이 되는 사상이 바로 그런 이론들이기 때문이다.(Morris & Parker; Scientific Creationism, 16th ed, pp 215-255, Master Books, El Cajon, CA, 1991)

이들은 공공연히 다윈의 ‘진화론’과 ‘동일 과정설’을 성경해석에 인용하거나 조화시키려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간격설’이나 ‘날-연대설’은 다윈이 ‘종의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1859)을 발표하기 이전부터 있어 온 신학적인 문제로서 이런 이론들을 진화론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성경과 조화시키려는 것은 진화론의 기독교 내로의 새로운 침투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이 유신진화론의 사상적 뿌리는 일부 교부들의 견해, 아리우스주의에 뿌리를 둔 유니테리언, 범신론적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관을 수용한 스콜라철학 및 큐비에의 다중격변설, 근세의 자연발생설과 세속 인본주의 및 벨하우젠의 문서가설, 벨그송의 생의 철학 등에 영향을 받았다. 이들의 영향을 받아 19세기말부터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는 물론 유대교와 이슬람의 내부로 유신진화 사상은 급속히 침투하였다.

개신교의 신학자들 중에는 1950년대 이후부터 더욱 대담하게 진화론을 옹호하는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허언(Walter Hearn & Richard Hendry 1961)이라는 신학자는 아담의 창조에 대해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는 성경의 저자들이 생명에 대한 다양한 시작(진화론)이 있을 가능성에 대해 성경이 거의 제약 하고 있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Russell L. Mixter ed.; Evolution and Christian Thought Today, Grand Rapids: Eerdmans, p 69, 1959] 

그는 휫튼 대학에서 열린 ‘오늘의 기원문제와 기독교적 사고’(Origins and Christian Thought Today, Fab. 17, 1961)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에서 “확실히 어떤 (진화)과정을 통해 오늘의 우리가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왜 아담이 어떤 과정을 통하여 창조되었다는 말에 무서워 떠는가? 어떤 (진화)과정을 통한 것인지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는 주장은 인정하지만 하나님이 그러한 (진화론적) 방법을 택하시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Journal of the American Scientific Affiliation, 14(2), June, p 42, 1961]

시포드(Henry Seaford 1958)는 “자연계에서의 인간의 위치에 대한 진화적 사고는 육체와 영혼에 대한 무신론적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 이제 나는 자녀들에게 윤리를 가르칠 때 인간의 육체는 고등 영장류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Henry W. Seaford; Near-Man of South Africa, Gordon Review, 4(4), Winter, pp 187-189, 1958]

유신진화론 자들에 의한 자연계시론(natural revelation)은 성경이 말하는 특별계시론(special revelation)을 압도하고 있다. 유신진화론자들은 동물에서 진화한 아담의 신체에 아무런 기적도 지속되지 않았을 것이므로 비록 하나님의 형상이 유인원에게 불어 넣어졌지만 그들은 다른 유인원처럼 병들어 죽게 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로마서 5:12에서 말하는 아담 한 사람의 죄로 세상에 죽음이 온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과학주의와 진화론의 유물론 사상에 물든 많은 신학자들이 진화론과 기독교의 타협을 시도하고 있으며 유럽과 미국의 전통적인 신학교들이 지금은 거의 다 이러한 신학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구미제국에서 신학교육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신학자나 목회자 대부분이 진화론에 관용적인 것은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에 한국 기독교의 심각성이 있다. 유신진화론자들은 이를 관용하고 정통교회에서는 이러한 흐름에 무관심한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한국 기독교계의 미래는 어디로 갈 것인지 명약관화하다. 어느 목회자는 자신이 다녔던 모 장로교단의 신학교 교수들 중 70% 이상이 유신진화론자일 것으로 확신하였다. 복음주의적인 신학대학이 이 정도라면 자유주의 성향의 다른 신학교의 경우는 가히 짐작할 만한 것이다.

2004년 위스콘신 대학의 마이클 짐머만 교수(Michael Zimmerman)는 ‘목회자 서신 프로젝트’(The Clergy Letter Project)라는 것을 시작했다. 반(反) 기독교적이면서 자칭 기독교인이라는 짐머만은 전 미국의 목회자들에게 진화론을 지지하고 문자적 역사로서의 창세기를 거부하는 내용의 편지에 서명을 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자 10,200명 이상의 성직자들이 이 거짓 내용에 서명했다. 그리고 이들 목회자들 중 많은 수는 그들의 웹 사이트에 진화론을 찬성하는 설교문을 올려놓아 다른 목회자들이 설교에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오하이오 주의 한 목회자는 그의 설교에서 “진화론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주장을 선포하기도 했다

짐머만은 다음 단계로 기부금을 요구했고 그 자금으로 목회자들이 서명한 편지를 광고하고 전국에 걸쳐서 공표할 수 있었다. 그는 전국적인 프로젝트에 대한 기부금의 세금 공제를 위해서 ‘진보 기독교인 동맹’(The Christian Alliance for Progress, CAP)이라는 조직을 결성하고 찰스 다윈의 생일을 축하하는 ‘진화주일’을 선포했다. 그의 웹 페이지에 “목회자 서신 프로젝트는 ‘진화주일’을 선물하였다.”라는 제목 하에 짐머만은 다음과 같은 설명을 했다.                

“2006년 2월 12일 전국의 모든 지역과 모든 종파의 기독교 교회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종교와 과학의 양립성에 대해서 함께 토론할 것이다. 너무도 오랫동안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은 종교와 현대과학 사이에 어느 하나를 선택하도록 불쾌한 소리를 들어왔었다. 1만 명 이상의 기독교 목회자들이 이미 내가 제시한 ‘목회자 서신’에 서명했다. 이것은 이런 이분법(dichotomy)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제 197회 다윈의 탄신일을 맞아 이들 지도자들의 다수는 이 메시지를 그들의 회중들에게 설교와 토론 등을 통해 전달할 것이다. 여기에 동참하는 종교 지도자들은 종교(기독교)와 과학(진화론)은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는 성명을 발표할 것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그들은 이 주제에 관한 전국적인 토론의 질을 향상시킬 것이다.”

수천 명의 목회자들은 그들이 기독교 신앙이라고 하는 것과 그들이 과학(진화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양립할 수 있다는 공개적인 성명서를 만들었다. 이들은 2008년 12월 8일을 다윈 출생 200회를 기념하며 대대적인 ‘진화주일’로 다윈을 찬양하는 예배를 계획했다.

그러면 ‘진보기독교인동맹’(CAP)은 진화론 이외에 무엇을 믿고 있는가? 동성애(homosexuality)에 관해 CAP는 ‘편협함을 거부하며 끌어안는 고귀함: 동성애자들의 평등권’라는 제목의 성명서에서 “예수님은 평등 정의 그리고 의무를 가르치셨다. 우리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을 환영하고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부름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 임신과 낙태에 대해 CAP는 “우리는 의도하지 않은 임신을 예방하는 것을 돕는 데에 진정으로 효과적인 책임 있는 프로그램들을 지지한다. 원하지 않는 임신 시에 여성은 하나의 결과(출산)만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각 여성의 신체는 그녀 자신의 것이라고 단언한다. 어떠한 여성도 출산과 낙태를 강요당해서는 안 된다.”라고 선언했다.

무신론자들은 기독교의 목회자들이 진화론을 지지하는 이런 일탈(逸脫)을 지켜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교회와 진화론의 이런 타협이 무신론(無神論)으로 향하는 첫 걸음인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다음 세대의 교회는 목회자들의 믿음과 성경의 모순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며 그리고 곧 그들은 모두 성경과 믿음을 포기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치는 말 

 자, 이제 교회는 어떻게 할 것인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다가오지만 실상은 사탄의 속임수에 불과한 진화론에 속수무책으로 앉아 당하기만 할인가? 성경과 진화론의 절충이란 성경적으로 볼 때 불가능하다는 것은 앞서 기술한 바와 같다. 그렇다면 답은 분명하다.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창세기를 역사적 사건으로 믿고 받아들여야 한다. 신앙의 기초를 창세기 1:1부터 다시 놓아야 한다.

진화론이나 창조론은 그 성격상 증명될 수 있는 과학이론이 아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과학시대가 주는 과학이라는 힘에 압도되어 성경의 진리를 선포하는데 목소리를 낮출 필요가 없다. 따라서 교회는 대담하게 창조론을 선포하고 가르쳐야 한다.

또한 성경을 믿는 많은 과학자들에 의하여 진화론의 허구가 밝혀지고 그들이 하는 과학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증거하고 있음을 볼 때 교회는 그들의 연구에 관심을 갖고 소위 과학적 창조론을 지지함으로써 성경이야 말로 참으로 정확한 역사적 기록 -가장 태초의 사건까지도- 임을 증거하고 나아가 과학시대의 이방인들에게 전도하는 도구로 창조론을 주장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교회여! 창조론을 가르치자! 우리 안에 있는 소망에 관하여 그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기 위하여(벧전 3:15), 아직 믿지 않은 자에게는 창조주를 발견하게 하여 그들을 그리스도의 부활의 소망 가운데로 인도하기 위하여(행 17:22-31), 세상에 대해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말세의 심판 때에(계 14:6,7) 저희가 핑계치 못하도록(롬 1:18-20) 교회여! 창조론을 열심히 가르치자!(*) 글쓴 이 / 이웅상 교수(한국창조과학회 전임 회장 3대, 5대, 명지대학교 교수, 교목) 출처 : 2009.10.10. 한국창조과학회 학술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