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예언자로서의 성도의 올바른 종말신앙

요즈음 잘못된 종말론이 극성을 떨치고 있다. 물론 사이비 종말론은 전부터 있어 왔지만 날로 그 정도가 더욱 심화 되고 있다. 노스트라다무스(Nostradamus, 1503-1566)의 예언이 세인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며 밀레니엄 공포를 조성하고 있으며 잘못된 종말론을 미끼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금품을 갈취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1999년 당시 상황, 편집자) 이런 때일수록 성도들은 종말에 대한 바른 성경적 견해를 가지고 미혹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1. 세상의 종말
성경은 세상 종말(終末)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세상은 옛부터 스스로 있어온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창조로 시작되었고 마찬가지로 모든 만물이 끝나는 종말이 있다. 그래서 이 세상은 창조(創造)로 시작되어 종말(終末)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런 점에 있어서 우주의 시간은 끝없이 돌고 도는 순환적(循環的)인 것이 아니라 과거에서 미래를 향해 계속 나아가는 직선적(直線的)인 것이다.
이런 직선적인 시간의 진행은 하나님께서 그의 선지자들을 통해 약속하시고 또한 그것을 성취하시는 사실에 의해 한층 확증된다. 그 대표적 예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初臨)이었다. 구약성경은 수없이 메시아 곧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언했고 때가 되매 언약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다. 이를 통해 우리 하나님은 일이 이루기 전에 미리 약속(約束)하시고 때가 되면 그 약속을 성취(成就)하시는 분이심을 나타내 주셨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을 말씀하셨으며 그리스도의 재림(再臨)과 함께 이 세상이 끝날 것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말씀대로 그리스도는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 가운데 하늘로부터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실 것이다.(살전 4:16, 행 1:8, 계 1:7) 그 때에는 죽은 자들이 살아나며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구원을 받아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한 복락(福樂)을 누릴 것이나 믿지 않는 자들은 불 못에 던지어져 영벌(永罰)을 받게 될 것이다.(계 20:11-15) 이 외에도 성경은 세상의 종말에 대해 자세히 말해 주고 있다.(마 24장, 막 13장, 눅 21장, 살전 4:13-5:11, 벧후 3장, 계 20장 등)
2. 참된 예언자
이런 점에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통해 ‘미래’(未來)를 알고 있으며 넓은 의미에서의 ‘예언자’(豫言者)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진리의 영(성령)이 오시면 그가 ‘장래 일’을 알려 주실 것이라고 하신 말씀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요 16:13) 곧 이 말은 우리가 미래의 일들을 하나하나 다 아는 ‘점쟁이’가 된다는 뜻이 아니라 장차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이며 이 세상은 끝나고 불로 심판받을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구원받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전하는 참된 ‘예언자’가 된다는 것이다.
사도행전 2장에 인용된 요엘의 예언 중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17절)는 말씀도 이런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곧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며, 마지막 날에 부활과 심판이 있으며,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게 될 것을 전하는 참된 예언자들이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점쟁이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있어서 엉터리 예언으로 사람들을 미혹(迷惑)하고 있지만 그 가운데서 확실하게 미래를 말하는 사람은 우리 그리스도인들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혼란(混亂)한 세상에서 참된 예언자의 역할을 감당하여야 한다.
3. 성경 종말 예언의 특징
성경이 말하는 예언(豫言)은 이 세상 점쟁이들의 점이나 거짓 예언자들의 종말 예언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이 세상의 점이나 예언들은 막연한 불안감의 해소나 단순한 지적 호기심의 충족 또는 이기적인 욕심의 성취를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거기에는 참된 구원이나 경건한 생활이 없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예언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 목적은 크게 보아 두 가지이다.
(1) 사람들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유명한 요엘의 예언에 잘 나타나 있다. 요엘 선지자는 말세(末世)에 성령이 임하실 때의 현상들을 말하고 나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다.(행 2:21, 욜 2:32)
오순절 날의 베드로의 설교도 종말 자체에 대한 강론이나 미래에 대한 예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구원을 받게 된다는 데에 초점이 있다. 따라서 참 예언은 사람들로 하여금 회개(悔改)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해 예수 그리스도와 아무 관련이 없는 예언들은 다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2) 성경 예언의 목적은 사람들로 경건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이다.
베드로는 그의 두 번째 편지에서 이 점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는 먼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만물의 기본 요소가 해체될 것을 말한 후에 이렇게 묻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이에 대한 답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벧후 3:11,12)는 것이다. 이처럼 성경의 예언은 종말현상(終末現象)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것은 곧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이며 ‘깨어 있어 근신(謹身)하는 삶’이다. 따라서 이런 경건과 근신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사람들로 하여금 불안하게 하며 방탕하게 만드는 종말론은 그 근본(根本)이 잘못된 것이다.
4. 경계해야 할 사이비 종말론
그런데 기독교 안에도 이상한 종말론으로 성도들을 미혹하거나 혼란케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들 중에는 ‘완전히 잘못된’ 이단(異端)들과 그렇지는 않지만 ‘잘못된 종말론’으로 성도들을 혼란(混亂)케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종류와 범위가 아주 다양하기 때문에 여기서는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1) 예수님의 재림 날짜를 계산하려는 시도(試圖)는 다 잘못이다.
이 점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언제 재림하신다고 날짜를 계산하고 주장하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한 때 ‘다미선교회’가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며 1992년 10월 28일 밤 12시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떠들었는데 이들의 주장에 많은 성도들이 흔들린 것은 한국교회 성도들의 올바른 성경적 교리(敎理)에 대한 신앙기반(信仰基盤)이 얼마나 취약(脆弱)한가를 잘 보여 준 사건이었다.
안식교의 초기 지도자들 중 하나였던 윌리엄 밀러(William Miller, 1782-1849)는 1843년에 예수님이 재림한다고 가르쳤지만 그 해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계산이 잘못되었다며 수정(修正)하여 다시 1844년 10월 22일에 예수님이 재림한다고 가르쳤지만 역시 허위(虛僞)로 판명되었다. 이처럼 예수님의 재림 날짜를 지정하여 미혹한 일은 기독교 역사상 많이 있었는데 어떠한 형태이든 그러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2)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았다거나 자기의 체험에 근거해 종말론을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미래에 대한 지식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전에 한국의 몇몇 고등학생들이 기도 중에 계시를 받았다며 1992년 10월 중에 주님이 오신다고 주장한 것은 아무리 그럴 듯해 보인다 할지라도 잘못된 것이다.
거짓의 아비인 사단은 몇몇 순진한 사람들을 꾀어 거짓 계시를 퍼뜨리고 그것을 통해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는 것이다. 변장술에 능한 사단은 오늘날도 계속 모양을 바꿔 가면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누가 어떠한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할지라도 성경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 것은 다 거짓이라고 보아야 한다.
(3) 단순히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종말에 대해 성경을 억지로 해석하는 것도 잘못이며 위험하다.
우리 주위에는 어려운(難解) 성경구절을 이상하게 해석해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자들이 있다. 특히 계시록강해를 전문으로 하는 부흥사들이 다니면서 이상한 말을 퍼뜨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것들은 거의 다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을 특히 주의해야 한다.
소위 ‘아마겟돈 전쟁’이라든지 ‘EC 10개국 연합’이라든가 ‘666 바코드’ 운운하는 따위는 사람들의 그릇된 호기심을 이용하여 성경을 무슨 암호 풀듯이 이상하게 해석하여 사람들을 두려움과 공포(恐怖)로 몰아넣는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과 경건에서 떠나 점점 이상하고 기괴(奇怪)한 이야기들에 관심을 갖도록 만들며 이를 통해 참 종교를 훼손(毁損)하며 성도들의 신앙을 오도(誤導)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이상하고 불경건한 이야기들에서 떠나 바르고 참된 믿음에 거하도록 해야 한다. 종말과 관련된 어려운 구절들에 대해 우리는 억지로 해석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그냥 모르는 채로 남겨 두는 것이 낫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을 억지로 풀려고 하다가는 파멸(破滅)에 빠질 위험이 아주 크기 때문이다.(벧후 3:16)
(4) 종말론을 사칭(詐稱)하여 금품을 강요하거나 현세의 삶을 포기 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이 세상의 종말이 임박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사람들에게 집을 팔고 재산을 처분해서 바치라고 요구하는 것이나 학교공부나 직장생활을 포기하고 오직 기도하면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따위는 다 이단적인 종말론이다.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다고 쉬 동요되거나 두려워하는 것은 옳지 않다.(살후 2:2) 그러므로 성도는 이 세상의 종말이 가까워 올수록 이런 이단적인 종말론에 미혹되지 않도록 더욱 주의해야 하며 이를 위해 늘 깨어 있어 기도하여야 할 것이다.
5. 올바른 종말론적 삶의 자세
그러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 것인가? 올바른 종말론은 우리에게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깨우쳐 준다. 죄와 악으로 물든 이 세상은 언젠가 끝날 것이며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말해 준다. 따라서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거할 것처럼 살아서는 안 되며, 이 세상과 벗하여 죄와 악에 빠진 삶을 살아서도 안 된다.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을 사랑하는 삶이란 곧 이 세상의 모든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삶이며, 또한 이 세상의 죄악에 물들지 않고 ‘정결함’과 ‘순수함’을 지키는 삶이며, 또한 주님의 뜻을 받들어 이 세상에서 주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다. 이 모든 것은 곧 우리 각자가 처한 삶의 현장을 통해 실천되어야 할 것들이다.
따라서 올바른 종말론 신앙은 우리의 ‘현재의 삶’의 의미를 더욱 의미 있게 하며 강화(强化)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주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고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다름 아닌 현재 이 시간 이곳에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주위에는 천국에 가는 것을 삶의 최고 목적으로 생각하고 늘 천국 가기만 사모하며 사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물론 요즘 같이 모든 사람이 다 어렵고 힘든 시대에 그런 신앙은 한편으로 귀한 것이긴 하지만 사실(事實)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가 천국에 가는 것은 때가 되면 갈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의 권한에 속한 것이다. 정작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옳게 살며, 얼마나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을 많이 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이라 일컫는 하루 동안에 최선을 다해 주님을 섬기도록 해야 한다.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짐을 볼수록 더욱 열심히 주님을 섬기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일할 날이 그만큼 많이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땅 끝까지 복음전파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의 참된 종말론 신앙이다.(*) 글쓴 이 / 변종길 교수(고려신학대학원, 신약학, 서울대학교 B.A., 고려신학대학원 M. Div., 화란 캄펜개혁교회신학대학원 Drs., 화란 캄펜개혁교회신학대학원 Th. D.) *이 글은 ‘월간고신’ 1999년 9월호에 실렸던 글이다.(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