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의의 현재와 미래/칼빈 탄생 500주년기념 지상강좌(10)
1. 루터의 종교개혁 의미와 한계
(1) 루터는 종교개혁의 횃불을 치켜든 전사(戰士)
종교개혁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단연코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다. 1517년 10월 31일 그는 로마가톨릭교회의 참람한 종교적 거짓과 부패에 맞서 ‘95개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성당 문에 붙였다. 그날 밤 이 회심의 도전장을 내걸고자 두드렸던 망치 소리는 천여 년 동안 어둠속에 방치되었던 진리의 빗장을 여는 울림이 되었다.‘
95개 반박문’ (95 theses, 1517.10.31.)은 요원의 들불처럼 삽시간에 유럽 전 지역에 퍼져나갔으며 종교개혁을 염원하는 이들의 마음을 불태우는 불씨가 되었다. 당시의 낙후한 인쇄 기술을 감안하면 이는 기적과도 같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95개 반박문’이 종교개혁의 서막을 알리는 전주곡이었다면 그의 대담하고 소신 있는 종교적 열정과 행동은 종교 개혁이라는 마차를 이끄는 용감한 근위병의 모습 자체였다.
이 같은 루터의 종교개혁은 세인들조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류의 업적중 하나라고 평가할 만큼 후세에 남긴 그의 업적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지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종교개혁을 논함에 있어서 루터 와 분리할 수 없음에도 우리의 시선을 그에게만 고정할 수 없는 몇 가 지 중대한 사실들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빛나는 영광의 순간도 많았지만 어두운 그림자 또한 길게 드리워져 있다. 종교 개혁이라는 역사상 가장 엄청난 영적 다이너마이트의 발화점이 되었지 만 엉성하고 거추장스러운 잔해들이 너무 많이 너부러져 있었다.
(2) 루터주의 종교개혁 운동의 한계
루터는 로마가톨릭교회를 향해 비판의 날을 세웠지만 그들의 잘못 된 진리 체계를 허물만큼 결정적이지 못하였으며, 이신칭의와 만인제사 장과 같은 로마가톨릭교회와 차별되는 개신교 신학의 금자탑을 세웠으 나 로마가톨릭교회의 교리적 가르침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또 교회와 세상을 향한 종교개혁의 남다른 애착과 의지를 갖고 있었으 나 오히려 후대로 접어들면서 그의 후학들은 세상 세력들과의 타협과 절충 속에서 그의 개혁의 의지는 현저하게 약화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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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루터의 종교개혁을 ‘미완(未完)의 개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는 진정한 이유는 그가 하나님 말씀에 대한 보다 정밀하고 완성도 있는 이해가 부족했던 점이다. 루터 개인의 의지는 아니었을지라도 보 다 엄밀하지 못했던 그의 신학적 이해는 언약론, 성찬론, 국가론을 해 석함에 중대한 오류를 범했다. 결국에 그의 과도하거나 부족했던 성경 해석은 그의 사상적 계보를 잇는 루터주의자들에게 이르러 “성경이 말 하지 않은 건 허용이 가능하다.”는 식의 보편과 관용의 해석적 틀로서 성경 전체를 이해하려는 신학적 변질의 단초가 되고 말았다. 루터주의 자들은 모든 세상 사람을 위한 루터를 요청하기 위해 종교개혁자 루터 를 이렇게 희생시켰다. 이는 역사적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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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칼빈주의에 대한 거짓과 진실
이러한 내용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모든 이들에게서 환영받는 것은아니다. 적어도 종교개혁이 시작되는 단계에서 루터와 칼빈의 꿈과 목 적이 공유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었을지라도 루터주의와 칼빈주의는 많은 차이점이 있으며 다른 결과를 낳았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 다. 루터주의와 칼빈주의라는 구별된 용어가 그것을 대변해주고 있다.
(1) 칼빈주의에 대한 한국교회의 인식
개신교(Protestant)란 로마가톨릭과 구별할 때 사용하는 말인 것처럼 칼 빈주의는 루터주의와 구별할 때 쓰는 말이다. 사실 후자는 반(反) 종교개 혁 세력들에 의해 붙여진 이름으로 그들이 볼 때 이미 두 그룹 사이에 는 내용상에 현격한 차이가 있었음을 반증해 주는 대목이다. 세상의 모 든 개신교도가 루터로부터 시작된 종교개혁을 말하나 우리 스스로를 루 터주의자라 하지 않고 칼빈주의자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종 교개혁의 본질적인 성격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할 때 루터와 루터주의에 서 머물 수 없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진술은 사실적인 내용을 떠나서 루터교회나 타 교단 의 입장서 볼 때 환영받을 만한 주장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처한 보다 심각한 딜레마는 타 교단에 속한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를 장로교회 교인이요 개혁교회 교 인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칼빈과 칼빈주의에 대해 냉소적이고 심지어 부 정적인 명목상의 칼빈주의자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최근에 ‘보수’ 혹은 ‘보수주의’라는 말이 새로운 시대 문화에 적응 하지 못하는 ‘수구꼴통’이라는 낱말로 묘사되듯이 ‘칼빈주의자’ 혹은 ‘칼빈주의’는 시대와 타협할 줄 모르는 오만하고 독선적인 신앙과 신학 쯤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고조되어 있다. 이쯤 되다보니 칼빈주의와 밀 접한 관련이 있는 교단과 교회 심지어 신학교에서까지도 종교개혁은 언급하더라도 칼빈과 칼빈주의는 너무 강조하지 말자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종교개혁을 간절히 염원한다고 하면서도 칼빈주의식의 종 교개혁에는 고개를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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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가장 참된 종교개혁을 향한 꿈과 의지 가 있다면 루터와 루터주의를 넘어서 도달해야 할 목적이 있음을 기억 해야 한다. 그런데 이 목적에 정확하게 도달하기 위해서는 많은 장애물 을 넘어야 한다. 그중에서도 칼빈주의자로서 극복해야 할 가장 시급한 내적 장애는 칼빈과 칼빈주의에 대한 구체적인 배움과 확신이 없다는 것이다. 칼빈주의를 표방하는 신학교에서 가장 홀대받는 것이 칼빈주의 강의라는 소리가 있을 만큼 칼빈과 칼빈주의는 별로 인기가 없다. 칼빈 주의를 신학 이념으로 표방하는 교단과 신학교는 많으나 그것을 신학 교육과 목회 현장에까지 제대로 적용하고 있는 신학교와 교회를 찾아 보기가 쉽지 않다.
칼빈주의 신학은 장로교회의 신학의 근간이요 사상의 뿌리이다. 이 는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인데도 장로교신학교에서 칼빈주의를 강조하지 않고 장로교회 간판을 걸어놓고도 칼빈주의를 말하지 않는 오늘 우리 의 교회 현실은 마치 한편의 유쾌 하지 않은 블랙코미디를 보는 느낌 이다. 왜 이런 모순이 상식이 되어 가는지를 물으면 이렇게들 답한다.
- 칼빈주의는 칼빈 개인을 위한 신학이다.
- 칼빈주의는 세상에 대해 너무 냉소적이고 독선적이다. 그래서 21세기교회의 트랜드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 칼빈주의는 성경주의라기 보다는 교리주의이다.
- 칼빈주의는 너무 예정론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 칼빈주의가 사변적이기는 하지만 복음적이지 않다
(2) 칼빈과 칼빈주의
오늘날 칼빈주의에 대해 만연해 가는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들은 대 개 경우 칼빈주의에 대해 정확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의 무지에서 비롯 되었거나 칼빈주의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이 꾸며낸 루머에 불과하 다. 칼빈이나 칼빈주의라는 용어가 부담스럽다면 사용하지 않으면 그만 이다. 하지만 이 용어들에 관한 오해와 편견이 있다고 해서 그 내용까 지 포기해버리는 일은 몸이 더러운 아이를 방에 들이려고 씻긴 후 더 러워진 물과 함께 아이를 내다 버리는 꼴이다. 바르게 앎이 없는 사람 일수록 주변적인 영향에 동요되듯이 칼빈주의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 는 사람일수록 칼빈주의를 쉽게 체념하고 포기한다.
한 가지 되짚고 넘어가자. 칼빈과 칼빈주의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칼빈이라는 한 인물의 인격이나 지식이나 능력에 관해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영적 진리가 감추어졌던 암매한 역사 속에서 칼빈이 라는 한 인물과 그와 뜻을 함께했던 수많은 종교개혁자를 통해 진리의 풍성함을 드러내신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를 주목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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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주의 신학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칼빈 개인의 신학을 신성시 하거나 칼빈주의는 오류가 없는 신학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함이 아니다. 다만 역사상 가장 순수하고 정밀한 성경 해석의 틀과 내용이 칼빈주의라는 신학 안에 내재 되어 있기에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 시는 보다 성경적이며, 보다 순수하며, 보다 엄밀한 교회와 성도를 세 워나가기 위함이다.
따라서 만약 누구든지 칼빈 개인을 우상화하거나 칼빈주의의 교리 를 성경보다 우위에 두거나 칼빈주의에 속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칼빈과 칼빈주의라는 낱말의 사용 여부와 상관없이 사악한 이단임에 틀림없다.
3. 루터와 루터주의를 넘어선 종교개혁
그렇다면 우리가 ‘루터와 루터주의’를 넘어서 ‘칼빈과 칼빈주의’로 나아가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왜 종교개혁의 의미를 논할 때에 이 칼 빈과 칼빈주의를 회피해서는 안 되는가? 오늘날 복음주의를 대변하는 루터주의와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칼빈주의가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다 시 한 번 바빙크(Herman Bavinck, 1854-1921)의 진술에 귀를 기울여보자.
(1) 루터주의와 칼빈주의의 차이점
- 칼빈주의 그리스도인은 신론적(神論的)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루터주의 그리스도인은 인간론적(人間論的)으로 생각한다.
- 칼빈주의자는 역사 안에 머물지 않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결정까지올라간다. 그러나 루터주의자는 구원사에 취해 더 높이 영원하신하나님의 결정에까지 나아갈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기 때문에칼빈주의 자들은 하나님의 선택(選擇)이 교회의 핵심이고 루터주의자 들은 칭의(稱義)가 교회의 항존적이고 항상 신앙의 출발점이다.
- 칼빈주의의 첫째 되고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에 이르시느냐?’에 있다. 그러나 루터주의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인간이 축복(행복)에 이르느냐?’에 있다. 즉 칼빈주의는 이교도와 우상에 대항하는 싸움이고 루터주의는 유대주의와 행위거룩(로마가톨릭)에 반대하는 싸움이다.
- 칼빈주의의 첫째 되고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에 이르시느냐?’에 있다. 그러나 루터주의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인간이 축복(행복)에 이르느냐?’에 있다. 즉 칼빈주의는 이교도와 우상에 대항하는 싸움이고 루터주의는 유대주의와 행위거룩(로마가톨릭)에 반대하는 싸움이다.
바빙크의 이 같은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것은 루터주의와 칼빈주의 에 대한 한 시대 속에 머문 평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바빙크는 이 진술 을 하기에 앞서 매우 정교한 필치로 초대교회로부터 20세기 초까지 교 회가 처한 역사적 정황과 교리를 구체적으로 더듬은 이후의 결론이다. 즉 칼빈주의의 신학은 사도들의 성경 이해에 충실하였던 초대 교부들 의 신학이요, 교부들의 해석을 총망라했던 어거스틴의 신학이요, 종교 적 거짓과 부패에 맞서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의 성경적 사상을 가장 적확(的確)하게 드러낸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에 대한 총체적 인 신앙고백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하나님 말씀에 대 하나님께 대한 순수한 기독론 중심의 믿음, 헌신적인 봉사 하나님의 인류 구원계획의 섭리에 의한 창세전의 선택(예정) 아우구스부르크 종교회의(1555) 베스트팔렌조약(1648) 한 가장 엄밀한 이해와 적용이 역사적 칼빈주의의 신학과 신앙 속에 담보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루터와 루터주의를 비롯하여 다른 교단의 신학과 신앙에 어느 정도 의 진정성과 경건성이 보장된다고 할지라도 그 곳에 진리의 닻(ancho)을 내릴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칼빈이나 칼빈주의에 대한 막연한 환상도 금물이지만 확신의 결핍 또한 문제이다. 칼빈과 칼빈주의에 대 한 무수한 오해와 편견은 더 이상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이 진리를 향 해 걸었던 정도(正道)로 나아가는데 장애나 핑계가 될 수 없다. 만약 바 빙크와 나의 견해에 동조할 수 없다면 도서관에 가보라. 인터넷 검색창 을 두드려보라. 종교개혁과 관련하여 칼빈과 칼빈주의에 관한 수많은 자료와 책들이 이 사실을 증명해 줄 것이다.
칼빈으로부터 개혁교회 3대 신앙고백(하이델베르그, 벨직, 도르트) 의 작성자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작성에 참여한 많은 신학자와 목회자 그룹, 수많은 청교도, 바빙크와 박윤선 그리고 일일이 이름을 열거할 수 없으나 오직 하나님께 영광만을 위해 전 삶을 드린 진리의 파수꾼들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칼빈주의라는 보석을 캐어내었고 칼 빈주의 안에서 하나님 말씀을 지켜내었다.
그리고 칼빈주의에 대한 그들의 확신과 헌신으로 말미암아 칼빈주 의는 종교개혁의 핵심이요 진리 체계의 최고봉으로서 신학으로서 오대 양 육대주로 퍼져나갔으며 지금 우리에게까지 전수되어오고 있다. 하지 만 칼빈주의 영향은 교회와 성도에게만 국한될 만큼 협소하고 제한된 것이 아니었다. 세상의 전 영역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등에 걸 쳐 가장 고상하면서도 근본적인 생의 원리를 제공하였으며 우주와 자 연 그리고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관조와 통찰을 제시해 주고 있다.
4. 칼빈주의에 대한 오해와 편견
그러나 칼빈주의의 이 같은 탁월한 진리성과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칼빈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주장인 예를 들어 삼위일체론, 예정론, 언약 의 통일성, 도덕법과 주일성수 등은 언제나 다른 신학으로부터 경계의 대상이 되었으며 세상과의 은밀한 거래를 통해 세상의 권세를 누리려 는 교회와 신앙으로부터 경멸과 조롱의 대상이 되어 왔다.
칼빈주의 신앙이 뿌리를 내리는 곳마다 성경적이면서도 진실한 신 앙고백들이 작성되었고 경건의 삶으로 회복되는 놀라운 경험이 나타났 음에도 칼빈주의는 박해와 억압의 그늘을 벗어난 적이 없었으며 진리 를 위해 생명을 내어놓아야 하는 고난과 위기의 기로에 서 있어야만 했다. 칼빈주의는 성경의 주된 가르침을 벗어난 적이 없으나 세상의 주 류 신학으로부터 모함과 질시를 받아야만 했다
칼빈주의의 역사를 진지하게 돌아보는 사람마다 깨닫게 되는 놀라 운 사실 중 한 가지는 칼빈주의는 어느 때에도 보편적이거나 대중적이 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 그런지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1) 칼빈주의는 세상에 대해 중립적이거나 세상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칼빈주의 5대 교리에서 볼 수 있듯이 칼빈주의는 인간의 전적부패,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택, 제한적인 속죄, 저항할 수 없는 은혜 그리고 성도의 견인 사상을 주장한다. 한마디로 칼빈주의는 :
- 인간의 경험보다 성경의 확실성을타협적인
- 인간 본성보다 변치 않는 하나님의 섭리를,
- 현상적인 사색보다 계시 의존 사색을,
- 인간의 공로와 행위보다 오직 믿음과 은혜를 고집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혁주의의 신본주의(神本主義)에 의한 강조점은 신학과 신앙 과 교회가 좀 더 인간적이고 좀 더 세상 적이기를 바라는 인본주의(人本 主義)에 의한 모든 이들의 양심과 행동을 항상 불편하게 만든다.
바빙크의 지적대로 칼빈주의 신학에 대한 부정적인 거센 반향들로 인해 17세기부터 칼빈주의에 타격을 주기 시작했으며 20세기에 이르러 서는 더욱 더 거세지는 현상이 구체적으로 목격되었다. 칼빈주의를 훼 파(毁破)하기 위한 도전은 수 세기 동안 신앙의 영역에 제한됨 없이 거의 전방위적(全方位的) 형태로 나타났다. 다음과 같은 것들이 칼빈주의를 훼 파한 대표적인 사상과 원리들이다.
(2) 칼빈주의에 대한 도전 세력과 그 영향력이 거세기 때문이다
- 인간의 이성(理性)과 자율성을 강조하는 계몽주의(啓蒙主義)
- 신적(神的) 권위와 확신으로부터 탈피를 시도한 데카르트주의
- 성경의 객관성보다 내적 주관과 경험을 신학의 원리로 삼은 재세례파
- 구원을 하나님과 인간의 공동의 작품으로 만든 아르미니우스주의
- 언약의 실체를 언약의 경륜의 흐름으로 전락시킨 코케우스주의
- 경건한 삶에 대한 추구와 의지를 진리의 핵심으로 대체한 경건주의
- 신이 지배치 않는 사회를 위해 신을 영원 시간 속 감옥에 가둔 이신론
- 인간을 신(神)으로부터 독립적인 존재로 규정한 민주주의
- 신학과 교리를 포기하고 교회의 성공과 확장에 몰입한 부흥주의
- 이러한 반(反) 칼빈주의적이거나 혹은 비(非) 칼빈주의적인 세력들을한데 규합하고 선동함으로써 칼빈주의의 몰락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신복음주의(New Evangelicalism)와 에큐메니칼운동(WCC)
5. 칼빈주의의 미래
만일 우리가 칼빈주의라는 신학적 배경 안에서 교회를 이루어가고 있으며 스스로 칼빈주의자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이러한 사상들이 칼빈 주의의 약화에 얼마나 결정적인 기여했으며 우리의 신학과 신앙에 얼 마나 치명적인 오류를 생산해 내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교회와 신앙은 역사적 상황과 분리될 수 없다. 칼빈주의의 발흥과 성장과 과정은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그렇기에 칼빈주의자에게 있어서 역사를 바르게 조망하는 역사적 안목이란 가히 필수적이다. 하 물며 칼빈주의 교회를 이끄는 목사들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끊임없 는 역사적 반성과 통찰을 통해 칼빈주의의 정체성을 바르게 확보해 가 는 일은 설교를 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일만큼 중요한 목회자의 책임인 동시에 의무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칼빈주의의 약화의 그림자가 오늘날 우리 시대에 길게 드리워져 있으며 우리는 부지부식 간에 매우 가파른 내리막길로 치달아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러함에도 종교개혁을 외치며 칼빈주의를 말하는 많은 이들이 이 상황을 그리 심 각하게 여기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칼빈주의를 표방하는 신학교와 교단에서 조차 칼빈주의 신학의 공동화(空洞化) 현상이 가속되어가고 있다. 역사의 굴곡 속에서도 그토록 수많은 칼빈주의 자들이 결코 타협하거 나 양보할 수 없었던 신학의 주제들이 교단과 강단으로부터 밀려나고 있다. 칼빈주의 신학을 지탱하고 참된 교회의 연합을 도모해주던 역사적 개혁주의 신앙고백은 한낱 과거의 빛바랜 추억쯤으로 여겨지고 있다.
더 이상 신학과 교리를 강조하지 않는 사이 교단과 교회 간의 실제 적인 신학적 구별 점은 사라지고 상호 간의 관용과 화합이 교회를 평 가하는 최고의 가치 기준으로 자리잡혀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의 구 호만 가득한 종교개혁이란 교단의 영향력 강화와 교회의 외적 성장과 확장 그리고 목회자 개인의 목회 비전과 성도 개인의 종교적 성취감을 고무시키기 위한 수단 이상의 의미가 없다. 우리가 처해 있는 이러한 상황에 대한 분명한 자각과 통렬한 반성과 뼈를 깎는 갱신의 노력 없 이는 칼빈주의의 미래를 낙관하기 힘들다.
그러나 여전히 종교개혁이 우리에게 화두(話頭)로 주어진 이상 언제 라도 참된 종교개혁에로의 적극적 가능성은 열려있다. 모든 시대의 종 교개혁이 우리 주님의 주권 가운데 있다는 사실은 이 땅에서 칼빈주의 자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가장 확실한 희망이 된다. 참된 종교개혁의 역사를 돌아보는 사람마다 우리 안에 있는 잘못된 종교개 혁의 환상을 포기하게 될 것이며, 우리 안에 남겨진 종교개혁의 거룩한 과업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는 한 종교개혁의 전통은 계속될 것이다. 왜냐면 참된 종교개혁은 하나님의 교회를 향하신 변함없는 바람이요 요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의 이 순간에도 종교개혁은 계속되고 있다. 참된 말씀 안에서 죄악을 통회하며 자신을 부정하며 성실과 정직 으로 말씀에 깃댄 삶 속에서 거룩한 말씀의 선포가 있으며 성례와 권 징의 정당하고 바른 시행을 통해 참되게 세워지는 교회 속에서, 역사적 칼빈주의의 신학적 유산을 소중히 여기며 말씀 앞에 부끄럼 없는 목회 자를 배출하는 선지 동산에서 종교개혁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만나 고 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의 생명이 살아 숨 쉬는 한 칼빈주의는 결 코 비관적이지 않다!(*) 글쓴 이 / 김병혁 목사(캘거리개혁신앙연구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