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를 위한 세계 교회사

평신도를 위한 세계교회사(38) 종교개혁사(4)

칼빈의 제네바성경(1560년), 칼빈에게 있어 성경은 그의 신앙의 시작과 끝이었고 그의 신학의 전부였다. 

      

4. 칼빈의 종교계혁(2)

(1) 칼빈의 개혁사상  

  • 성경중심

칼빈의 종교개혁은 성경원리를 따라 교회를 개혁하는 것이었다. 칼빈은 이런 점에서 루터보다 더 성경적인 원리에 충실하려고 했다. 루터는 성경에 하지 말라고 명시된 것들 외에는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한 반면 칼빈은 성경에 하라고 명시되지 않은 것은 할 수 없다고 했다. 칼빈에게 있어 성경의 권위는 로마 가톨릭의 교회전통이나 교황의 교권보다 더 신(神)적인 것이고 절대적인 것이었다.

또한 칼빈은 그리스도인의 모든 신앙과 생활의 척도가 되는 성경을 해석하기 위해 일생을 주석 학자로 보냈다. 그러므로 칼빈은 자신을 종교개혁자라기 보다 성경학자로 생각했다. 그는 요한이서, 요한삼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제외하고 신약의 모든 성경에 대한 주석을 썼다. 그리고 구약의 모세오경, 여호수아, 시편, 이사야 주석도 썼다. 또한 구약의 선지서에 대한 설교와 강의 등을 남겼다. 총 45권에 달하는 방대한 성경연구의 업적을 남겼다.  

그의 신학과 신앙원리를 제공한 칼빈의 영원한 불후작 ‘기독교강요’(基督敎綱要,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1536)도 성경의 가르침을 기초로 구성되어 있다. 다음은 칼빈의 성경에 대한 견해를 깊이 연구한 맥킴 교수의 분석을 중심으로 칼빈의 성경관을 정리한 것이다.

  • 성경의 필요성

인간이라는 존재는 스스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의사소통 그리고 그의 계시를 나타내기 위해서 성경이 필요하다고 칼빈은 말하고 있다. 칼빈은 하나님께서 만물 속에 신앙의 씨앗(seed religion)을 심어 주셨기 때문에 사람은 생득적(生得的)으로 신(神) 지식에 대한 의식을 갖고 있지만 인간의 범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은 우상숭배의 길로 가게 되었고 무지와 악의의 소치로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이 오염되어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길은 인간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와의 올바른 관계를 정립해야만 하는데 이 지식을 알려주는 유일하고 무오한 계시는 성경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연도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제공하지 못하며 조물주로 안내하는 것은 바로 성경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칼빈은 성경의 기능을 안경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노안(老眼)이나 근시(近視) 또는 시력이 약한 약시(弱視)의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장정(裝幀)의 책을 내민다면 그들은 그것이 글이라는 것은 알지만 단 두 자도 알아볼 수 없다. 그러나 안경의 도움을 빌리면 분명히 읽을 수 있듯이 성경도 우리 마음에 혼잡하게 흐트러져 있을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모으고 우리의 우둔함을 추방하고 우리에게 참  하나님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칼빈의 ‘기독교강요’ 제1권 제1장 1항

칼빈은 자연도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반계시를 발휘한다고 했였다. 그러나 오직 성경만이 인간과 피조 세계가 하나님을 바르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길이다. 성경을 통하면 타락한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을 알기가 얼마나 쉬운지 알 수 있고 또 타락한 인간은 온갖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가르침이 기록으로 남아 망각을 통해 없어지지도 않고, 오류를 통해 사라지는 일도 없고, 사람들의 만용 때문에 훼손되는 일도 없게 되는 것이 얼마나 필요했는가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우주에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신의 모습을 새겨 놓았다 하더라도 충분히 효력을 발취하지는 못할 것을 내다보셨기 때문에 유용한 가르침을 주고 싶어 하시는 사람들 모두를 위해서 이 성경말씀의 도움을 마련해 주셨음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 같이 칼빈에게 있어서 성경이 없었다면 인간도 자연도 하나님에 대한 참 지식을 알 수 없고 영원한 어둠속에 처해 있게 될 것이기 때문에 성경은 인간과 자연에게 하나님에게로 가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진리의 말씀으로 이해되었다.

  • 성경의 권위

칼빈이 성경의 권위를 세우면서 로마 가톨릭과 입장을 달리한 주된 포인트는 교회가 성경의 권위를 부여한다는 로마 가톨릭의 주장이었다. 칼빈은 로마 가톨릭의 이 같은 주장을 정면으로 거부했다. 칼빈은 신약 교회가 존재하기 이전에 이미 선지자들이 있었고 신약교회 또한 사도들이 세운 터 위에 세워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말은 로마 가톨릭 교회가 있기 이전에 이미 사도들과 말씀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신약교회는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가르침이 기초가 되어 존재하게 되었기 때문에 교회가 성경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로마 가톨릭에서 만들어 낸 잘못된 것이라고 칼빈은 반박했다. 칼빈은 더 나아가서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렸던 것처럼 사람들이 성경을 하늘에서 내려온 것으로 여길 때만이 성경은 신자들 가운데서 권위를 갖는다.”라고 했다. 하나님은 성경 안에서 자신의 입을 열어 말씀하시며, 성경 안에서 자신의 말로 말씀하시고 계시며, 그것이 글로 적히고 날인되었으며 말씀하고 계신다고 했다.  

그래서 칼빈은 성경에서 전달되는 메시지는 전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지 교회로부터 온다고 믿지 않았다. 그러나 성경에 대한 이러한 확신은 인간 스스로 되는 것이 아니며 성령으로부터 오는 확신이라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칼빈은 성령의 내적증거(內的證據)라는 말을 사용했다. 이는 “우리 확신을 인간의 이성이나 판단이나 추측보다 더 높은 곳에서 즉 성령의 은밀한 증거에서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칼빈이 이 같은 성경의 권위를 절대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근거로 성경의 내적증거와 더불어 주장하는 것은 성경의 자증(自證)을 주장했다. 성령의 자증도 성령의 특별한 내적 증거로 인해 이루어진다. 그래서 칼빈은 성령과 말씀은 항상 떨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칼빈은 또 성경 중심에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심을 역설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고 목적이시다. 이러한 것에 대한 인간의 확신도 성령의 사역인데 성경과 함께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의 권위는 칼빈에게 있어서 인위적인 로마 가톨릭교회에서의 인정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1)신적 계시와 2)성령의 내적 증거 그리고 3)성경의 자증에 있다고 주장했다.  즉 성경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계시된 신적인 진리라는 것이다.

  • 성경의 영감

성경의 권위는 인간의 인정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경 안에서 성경을 통해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칼빈은 주장했다. 그런데 이 성경은 바로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절대권위가 있다고 보았다. 이는 성경의 신적 기원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칼빈은 이에 대한 증거로 성경을 ‘하나님의 입’, ‘성령의 학교’. ‘성경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등으로 표현했다. 칼빈은 성경의 신적 기원과 권위를 말하면서 기계적인 성령의 영감을 주장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모든 인간의 혼합물이 없는 하나님의 순수한 말(word)’이라고 하였다. 마치 그의 주장은 기계적인 영감설을 주장하는 것처럼 오해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칼빈의 ‘받아쓰기’라는 표현은 문자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보다 넓은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칼빈이 이렇게 표현한 것은 성경의 성경 기록자를 넘어 성경의 궁극적인 기원은 그 기록자에게 영감을 주신 하나님께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성경이 영감으로 된 것은 연약한 인간들의 양심에 보다 분명하고 자세한 가르침을 계시해 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칼빈은 말한다.  

“주님께서는 연약한 양심들을 보다 잘 채워주시기 위해 보다 분명하고 자세한 가르침을 계시하기를 기뻐하셨음으로 예언들 또한 글로 남겨져 자신의 말씀의 일부로 취급되도록 명령하셨다. 그와 동시에 역사서들도 여기에 덧붙여졌는데 이것 또한 선지자들의 노고이지만 성령의 감동아래 작성되었다. 또한 우리 모두 시편에 예언이 담긴 것으로 보기에 시편 또한 여기에 침부시키셨다.” 이렇게 하나님은 자신의 메시지를 인간의 수용(受容) 능력에 맞도록 수용하셨다는 것이 칼빈의 영감이론이다. 그는 성경 기자들의 성품, 말, 생각 등을 통해서 영감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영감과 성령의 자율적인 개입 그리고 인간의 성경기록은 역동적인 관계로 이루어져있다. 결코 기계적인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의 권위는 더욱 확실한 것이다.  

(2) 칼빈의 교회관

칼빈의 종교개혁은 국가나 사회의 개혁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의 주된 관심과 최우선은 역시 교회개혁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신적인 소명은 단순히 제네바교회를 위한 것뿐만이 아니라 보편적인 지구촌의 총체적인 모든 교회를 위한 것이었다. 칼빈는 시편의 서문에서 자신의 짧은 전기를 서술하면서 교회 일에 관여한 자신을 구약의 다윗 왕이 목자에서 불림을 받아 최고의 통치자의 위치에 오른 경우를 비교하였다. 그는 사돌렡(Sadolet)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자신을 지도자들의 표준을 고양시키고 그들에게 직위를 회상시키는 병사로 비유했다.

그는 특히 1554년 폴란드의 왕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의 개인적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의 독특성을 주장하였고 특별한 의무감과 결정의식을 강조하였다. 즉 칼빈은 하나님의 부름에 대한 특별한 소명의식을 견지하였다. “주님이 그가 그의 교회를 모으시기 위해 우리의 봉사를 이용했을 때 우리에게 지워주신 이 직분은 이례적인(특이한) 것이다. 온당하지 못한 방식으로 인간의 기대와는 반대로 참 종교의 수호자로 등장한 자들은 그들의 직분을 가져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은 이 특별한 목적을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불림을 받았기 때문이다.”칼빈은 하나님으로부터 불림을 받은 소명의 중심은 바로 교회이며 이것을 하나님의 특별한 초청으로 인식하고 있다. 칼빈은 당시의 급진주의자들인 재세례파들처럼 교회 자체에 대한 존재론적인 중요성과 의미를 부인하지 않았으며 교회의 역사적인 정당성도 거부하지 않았다. 그리고 칼빈은 루터와 같이 말씀과 성례가 교회의 진정한 징표(徵標)임을 말한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교회의 징표를 전통과 외적인 종교 예식들로 삼지만 칼빈에게 있어서 진정한 교회의 표징(標徵)은 말씀의 올바른 선포와 올바른 성례(聖禮)의 집행이었다.(*) 글쓴 이 / 심창섭  (목사/교수) 출처 / 기독교 교회사(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2004년)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