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과 종교 다원주의의 역사
PART Ⅱ

들어가는 말
최근 종교다원주의 자임을 자처하는 서강대 불교학 길희성 교수의 ‘보살 예수’의 출간(2005년)을 계기로 다시 한 번 한국교계에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논의가 촉발되었다. 종교다원주의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사용되었다.
첫째, 기독교 이외에도 다양한 종교가 혼재하고 있는 다(多) 종교 상황을 가리키는데 서술적 다원주의라고도 한다.
이런 다(多) 종교사회를 의미하는 종교다원주의는 한국사회에서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우리나라는 기독교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무교, 불교, 유교, 도교 등 다양한 종교가 자리 잡고 있어 이미 역사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다종교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한 다종교 속에서 기독교가 수용되어 성장해 왔다. 그리고 이런 다종교 속에서 기독교는 다른 종교들과 커다란 마찰 없이 뿌리를 내려왔다.
그런데 이런 다종교 사회라는 의미의 종교다원주의도 종교 간의 갈등이 깊게 조장되면 커다란 사회갈등을 일으킬 소지를 다분히 안고 있다. 서구사회는 종교개혁 이후에 로마가톨릭과 개신교 종파 간 전쟁 혹은 유고 지역의 그리스 정교회와 이슬람교 사이의 종교 간의 갈등으로 여러 번 종교전쟁을 치러야 했고 지금도 그런 갈등 속에서 고통을 당하는 곳들이 지구상에 여러 곳이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도 기독교인으로서 전(前) 이명박 시장의 서울시 봉헌 발언 논란(2004년), 정장식 포항시장의 성시화 발언(2004년)으로 빚어진 불교계의 대규모 집회 등으로 기독교와 불교 사이의 종교 간 갈등 양상도 표출되었다. 그러므로 이제 한국의 이런 다종교 사회라는 의미에서의 종교다원주의화 되어 있는 한국사회 안에서 타종교 간의 갈등을 줄일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할 것이다.
둘째, 종교다원주의는 이런 다양한 종교들이 모두 동등한 구원의 길을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주장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부정하고 보편적 그리스도론을 주장하거나 신(神) 중심적인 신학을 주장하는 종교신학에서 나오는 종교다원주의는 기독교의 전통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종교다원주의는 기독교의 정체성을 뿌리 채 흔드는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로마가톨릭 신학자들과 WCC를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적극적으로 종교다원주의를 옹호(擁護)하고 있다.
그러므로 본고에서는 종교다원주의의 발생배경과 전개과정을 분석해 보고 그런 종교다원주의에 대해 개혁주의는 어떻게 대처해야할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I. 종교 다원주의의 발생 배경
(1) 종교다원주의는 비교종교학과 종교사학파에서 발생했다.
비교종교학은 기독교가 18-19세기 아시아와 아프리카 같은 지역으로 복음을 전파하면서 기독교인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던 종교들과 기독교를 비교하면서 그 특성을 파악하고자 하면서 발생했다. 이런 비교종교학은 기독교를 중심으로 하여 다른 종교들의 특성을 파악하여 선교의 사명을 수행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중국에서는 명나라 때 이미 1641년에 마태오 릿치(예수회 선교사로, 중국 선교를 위해 마카오에서 10년 동안 중국의 유학을 공부하고 나서 로마가톨릭의 교리를 중국인들에게 전하기 쉽게 정리하여 한문으로 설명한 책이 천주실의이다. 그의 중국 이름은 이마두, 그의 호는 서강이다.)가 천주실의를 저술하여 기존의 중국 종교의 개념들을 이용하면서 로마가톨릭 신앙을 소개 전파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이런 비교종교학에서 점차로 모든 종교를 동일하게 취급하는 종교학이 20세기에 들어서 발전하게 되었다. 서구의 비교종교학에서는 모든 종교들을 동일 선상에 배치한 후에 각 종교의 특성을 이해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런 비교종교학은 종교현상학과 종교역사가 중심이 되어 발전하고 있다.
독일에서 19세기 마지막 10년 간 발전한 학파가 종교사학파이다. 이 학파는 세계 모든 종교를 역사의 발전과정에서 이해하려고 했는데 이 학파의 대표는 독일의 트뢸취(Ernst Troeltsch, 1865-1923)이다. 그는 순수 경험적인 역사적 방법(역사주의)에 기초를 두고 종교를 리츨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교의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 정신이 함께 참여하는 역사 속에 뿌리를 두고 역사적으로 전개되어 온 것으로 이해했다.
이런 종교의 발전 과정에서 하나님의 현현(顯現)은 상대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트뢸취는 “기독교는 결코 종교의 보편적 원리라고 생각되는 것의 분별적, 최종적, 무조건적인 실현이 아니다. 기독교 이외의 다른 위대한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기독교도 그 역사의 매 순간에 있어서 철저히 역사적인 현상이며 모든 개별적 역사 현상이 직면하게 되는 모든 제한에 종속되어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이런 상대적 현현은 하나님의 계시의 유일한 절대적인 의미를 가질 수가 없다. 이 같이 트뢸취는 기독교의 절대주의를 부정하고 종교 상대주의를 표명하였다. 그렇지만 트뢸취는 이런 종교 발전 과정의 마지막 단계가 기독교라고 보고 기독교의 상대적인 절대성을 주장햇다. 그러나 트뢸취 이후에 발전과정에서 종교는 역사적 발전과정의 상대적인 산물이라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2) 종교다원주의 탄생에 크게 기여한 것은 폴 틸리히부터 발전하기 시작한 문화신학이다.
그래서 종교는 쉽사리 계시성과 초월성을 잃어버리고 세속화되거나 이데올로기로 변질되기 쉬우므로 끊임없는 문화 신학적 비판과 검증을 통해 종교의 타락을 방지해야 한다. 이와 같이 문화신학이란 각 문화가 가지고 있는 종교적인 특성을 분석하여 문화를 본래적인 위치로 회복시키고자 한다.”
그러므로 폴 틸리히는 신(神)이 어느 특정한 방법으로만 현현한다는 특별계시의 주장을 배제하면서 타종교에도 계시적인 접촉이나 신과의 만남이 있다는 그리스도교 보편주의를 표방했다. “예수에게서 특수한 것은 보편적인 것을 위해 자기 속에 있는 특수한 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다는 사실이다. 특수하면서도 특수한 것에서 해방되고 종교적이면서도 종교에서 해방된 이런 모습과 함께 기독교는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를 판단함으로 다른 타(他) 종교도 판단하는 표준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는 기독교가 타종교를 판단하는 일과 다른 종교에 의해 기독교가 판단 받는 일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 속에서 기독교는 이제 다른 종교인들을 개종시키려고 노력하는 대신에 자기 성찰과 대화를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활동의 목표는 종교들을 혼합하는 것도 아니요 타종교에 대해 승리하자는 것도 아닌 자기 비판적인 대화를 통해 자기 종교의 깊이로 더욱 파고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는 모든 종교에 공통되는 하나의 신(神) 혹은 신(神)을 초월한 신(神) 개념을 제시하며 신(神) 중심적인 사상을 강조한다. 틸리히는 타종교와의 상호적인 만남을 통해 각 종교의 한계를 의식하고 보다 포괄적인 종교로 발전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러한 문화신학을 통하여 종교다원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였다.
(3) 로마 가톨릭은 칼 라너의 ‘익명의 그리스도론’을 토대로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기독론 중심의 구원론에서 타종교에서의 구원 가능성을 인정하는 포괄주의의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4) 종교다원주의는 WCC를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WCC(세계교회협의회, World Council of Churches)는 1961년의 제3차 총회에서 타종교를 ‘다른 신앙’으로 표현하면서 타종교의 이 다른 신앙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성령이 역사하시는 것을 긍정했다. 이 총회에서 인도 신학자인 더바난단(P. Devanandan)은 ‘증인으로 부르심을 받다.’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비(非) 기독교 종교들을 ‘성령의 창조적인 사역’으로 해석하고 복음을 비(非) 기독교적인 기존 철학적 신앙의 개념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70년에 이르면 WCC는 종교 간의 대화를 진행하기에 이른다. 1971년에 인도 신학자 사마르타는 종교 간의 대화 프로그램에 책임을 맡으면서 종교 혼합주의 대화를 본격적으로 진행한다. 그는 다원주의 사회에서 종교 간의 대화가 유일한 희망이라고 주장하면서 종교 간의 대화를 위해 보편적 기독론을 주장하여 기독론을 확장하고 다른 종교들뿐만 아니라 무속신앙과 같은 세속적 신앙이념들 안에 작용하는 성령의 사역에 민감한 포괄적 성령론을 제안하였다.
그는 ‘보편적인 그리스도 앞의 힌두교인’이란 논문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것을 하나님께 대한 신성모독(神性冒瀆)이라 주장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다른 사람들도 그들 속에 내재한 신성(神性)을 실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될 능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기서 그의 보편적 기독론적인 혼합주의를 통해 기독교의 기독론과 힌두교의 브라만 사상을 혼합시키고 있다.
WCC는 이런 종교 간의 대화를 진행시키는 가운데 1985년부터 ‘종교 간 대화 소위원회’는 ‘네 이웃의 신앙과 나의 신앙 : 종교 간의 대화를 통한 신학적 전망’이란 주제를 가지고 4년 동안 연구했으며 그 연구결과를 정리하여 1990년 스위스 바아르(Baar)에서 ‘바아르 선언문’(Baar Statement, 1990)을 발표했는데 그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서론, 2) 종교 다원성에 대한 신학적 이해, 3) 종교 전통 속의 애매성, 4) 그리스도론과 종교다원주의, 5) 성령과 종교다원주의, 6) 종교 간의 대화
이 문서는 기독교의 그리스도 중심주의를 신(神) 중심주의와 성령(聖靈) 신학으로 감싸고 있어 그리스도 중심적 사고를 넘어 신(神, god) 중심적 사고와 성령론적 사고로 전환(轉換)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렇게 WCC는 다른 종교의 가치를 인정하여 종교 간의 대화를 추진하면서 신(神) 중심적인 신학 방법론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WCC의 바아르 선언문(Baar Statement, 1990)은 신학적 종교다원주의의 선포로서 모든 진리는 하나이며 모든 종교는 다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주장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 외에도 모든 타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선언이었다.
(5) 종교다원주의는 자유주의 신학의 발전의 결과이자 더 직접적으로는 후기 자유주의신학을 배경으로 가지고 있다.
종교다원주의는 성경의 권위를 부인(否認)하고 비평(批評)하는 19세기에 시작된 자유주의신학의 필연적 산물이다. 뿐만 아니라 종교다원주의는 정통적인 기독교교리에 새로운 교리들을 덧붙이면서 신(神) 중심적으로 사고하는 후기 현대자유주의 신학운동의 결과이다.
(6) 1980년에 등장한 종교신학이 종교다원주의를 정당화시키는 신학적인 토대를 제공하게 되었다.
종교신학은 종교다원론의 문제를 취급하여 다양한 세계 종교들을 통해 나타난 신(神)의 구원역사를 동등하게 취급하고자 하는 관점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기독교의 유일성과 독특성은 부정(否定)되고 기독교는 모든 종교와 동일한 하나의 종교로 취급하게 되었다.
(7) 종교다원주의 신학은 비서구 신학자들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자각과 해방을 염원하는 가운데 촉진되었다.
종교다원주의 신학은 비서구 신학자들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성찰과 자각이 정치 경제적 해방뿐만 아니라 문화와 종교 제국주의로부터도 해방을 염원함으로 자신들의 종교유산을 적극적으로 평가하려 시도하면서 종교다원주의는 더욱 확산되어 가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종교의 정체성을 주장하면서 모든 종교의 동등성을 내세우는 상대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런 다양한 배경 때문에 종교다원주의는 21세기에 이르러 더욱더 확산되어 가면서 기독교에 도전하고 있다.
II. 신(神) 중심의 종교 다원주의자들의 주장
종교다원주의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로마 가톨릭교회 중심으로 보면:
1)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교회 중심주의에서
2) 제2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라너의 ‘익명의 그리스도인’을 중심으로한 그리스도 중심주의로 이동했으며,
3) 그리고 마지막 단계로 신(神) 중심주의로 진행되어 가고 있다.
또한 종교다원주의의 유형은 타종교의 구원의 가능성을 인정하는 여부에 따라:
1) 배타주의 – 요한복음 14:6과 사도행전 4:12을 근거로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한 유일한 구원을 주장한다.
3) 다원주의 – 모든 종교 안의 구원가능성을 인정한다.
이러한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반응에 대해 ‘니터’는 ‘오직 예수 이름으로만?’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분류했다.
1) 참된 종교는 하나라고 주장하는 보수적인 복음주의 모델
2)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만 있다고 주장하는 개신교 주류의 모델
3) 길은 많으나 규범은 하나라는 로마가톨릭의 모델
4) 중심에 이르는 많은 길들을 주장하는 신(神) 중심적인 모델
이제 본 절에서는 본격적인 신(神) 중심의 다원주의를 주장하는 학자들의 견해들을 분석해 보고자 한다. 신(神) 중심의 종교 다원주의는 초기에는 인도의 신학자 사마르타(Stanley T. Samartha), 인도의 가톨릭 신학자인 파니카(R. Panikkar), 남인도 뱅갈로(Bangalore) 에큐메니칼 선교센터원장이며 1968-1975년까지 WCC 중앙 위원장을 지낸 토마스(M.M. Thomas) 등이 주장한 보편적인 그리스도론과 영국 장로교 목사인 존 힉(John Hick, 1922-2012)과 로마가톨릭 신학자 폴 니터(Paul Knitter) 등이 주장하는 신(神) 중심주의가 있다.
(1) 보편적 그리스도론
파니카는 스페인의 로마가톨릭 신자인 어머니와 인도의 힌두교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두 종교 전통 속에서 자라난 배경에서 발생한 타종교에 대한 경험 때문에 종교 간의 대화를 주장했다.
그는 1964년에 발표된 처녀작인 ‘힌두교의 익명의 그리스도’에서 계시의 완성이 역사적 예수에서 이루어졌다고 하여 예수의 규범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입장이 변하기 시작해 1978년에 발표한 ‘종교 간의 대화’(The Intrareligious Dialogue)에서는 참다운 종교 간의 대화를 위해서는 현상학적인 판단중지를 넘어서서 개종의 위험을 포함한 철저한 자기 개방을 통한 참된 대화를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1981년에 앞의 책을 개정하면서 부터는 기독교와 예수의 규범성에 대한 그의 이전의 관념을 깨끗이 거부하고 종교다원주의를 적극적으로 주장하여 참된 보편적 그리스도론을 세우려 한다.
그는 세계가 변하여 의미의 지평이 변하면 이해도 변해야 하므로 그리스도의 유일회성과 보편성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는 재해석될 수 있고 재해석되어야 마땅하다고 보았다. 이 새로운 해석에 대한 그의 제안은 보편적 그리스도와 특수한 예수 사이의 구별이다. 즉 ‘그리스도는 실재 즉 신, 인간, 우주의 전체성에 대한 살아있는 상징’이고, 이른바 ‘시원적인 신인(神人) 양성적 실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인정하나 그리스도가 예수라는 것을 부인한다. 그래서 그에게는 그리스도는 예수 이외에도 라마, 크리쉬나, 이스바라 등 수많은 역사적 이름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는 보편적 그리스도론에 입각하여 종교 간의 대화 자세에서 타종교를 적대시하거나 흡수하는 배타주의와 포용주의를 비판하고 각 종교의 동등한 가치를 인정하는 병행주의(竝行主義)를 제시했다. 이 같이 파니카는 보편적인 그리스도론을 주장하여 신(神) 중심주의로 나아갈 수 있는 토대를 놓았다.
(2) 신(神) 중심주의
신(神) 중심주의 신학을 주장하는 대표적 종교철학자 영국의 존 힉은 칼 라너 같은 학자들이 타(他) 종교인을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것은 아직도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는 이전의 교조주의적인 태도를 벗어나지 못한 입장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포괄주의는 배타주의에서 다원주의로 넘어가는 가교역할만 할 뿐이다. 그는 이런 변화를 위해서는 ‘종교 신학에서의 코페르니쿠스적인 혁명’을 주장한다.
이것은 예수 중심적 모델에서 신(神) 중심적 모델로의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한다. 이러한 전환이 일어나면 우리는 위대한 세계 종교들을 하나의 신적 실재에 대한 서로 다른 역사적, 문화적 환경 속에서 형성된 서로 다른 자각들을 구체화한 것으로 보게 된다는 것이다.
힉의 종교 신학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철학적 원리는 선험적 합리론과 경험적 실재론을 결합한 칸트의 인식론적인 노력이다. 그는 신(神)을 우리 밖에서(extra nos) 작용하는 자로서 경험하며, 현상적인 종교세계는 이러한 신(神)에 대한 감각적 지각을 통한 경험세계의 표현이다. 그에 따르면 예수는 신(神)과의 만남을 위한 중재자이나 유일한 중재자가 아니다.
힉의 신론(神論)은 다양하고 상이한 종교 속에 있는 신(神)의 모습의 다양성을 받아들이는데서 출발한다. 그는 신(神)의 본질적인 실체와 그 실체에 대한 경험을 구분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신(神) 자체를 경험할 수 없으며 우리의 경험은 그 실체에 대한 하나의 형상(形像)일 뿐이다. 이러한 형상(形像)들이 세계의 여러 종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힉은 그리스도교의 배타성은 예수가 곧 하나님이었다는 성육신(成肉身)에 근거하고 있는데 그는 이것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그는 니케아에서 칼케돈 교리 형성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때 최근의 성경연구가 밝히는 바와 같이 예수는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으므로 하나님께 헌신되고 순종하며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이라고 보았다.
그는 예수의 성육신에 대한 진술은 ‘정확한 형이상학적인 진리’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헌신 안에서 상상적인 구성으로 주어진 표현’이라고 말하면서 성육신의 표현을 상징적이고 신화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성육신의 진술은 예수는 하나님의 사랑의 완전한 성취이자 그리스도인들의 삶속에서 경험된 그리스도를 통한 해방(解放)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는 예수는 지상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사랑이었다는 의미에서 전적인 하나님(totus Deus)이었으나 하나님의 사랑이 그의 모든 행위를 통해 남김없이 표현되었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전체(totum Dei)는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명제 즉 예수는 그리스도 중 하나라는 면은 받아들이나 그리스도는 예수라는 명제 즉 오직 예수만이 그리스도라는 명제는 거부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이 동방으로 나갔더라면 예수는 아마도 보살로 신봉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예수의 메시지는 원래 오직 신(神) 중심적이고 왕국(王國) 중심적이었으나 그의 죽음과 부활 이후에 초대교회에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그리스도론의 진화(進化)는 초대교회의 삶의 자리인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상황의 반영으로 이해하며, 그러므로 신약성경의 예수에 관한 증언이 사도행전 4:12에 나타나는 바와 같이 배타적이거나 규범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니터는 이런 증언들은 문자적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되고 해석학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성경이 형성되던 초대교회 시대는 진리는 확실하고 하나라고 믿던 고전주의 문화의 시대였으며 그들의 삶의 자리는 유대교의 종말론적이고 묵시문학적인 전승의 맥락에 지배되고 있었고, 로마제국이란 강력한 힘에 의해 위협 당하고 있었으므로 강력한 배타적 언어가 사용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이런 배타적인 용어는 형이상학적 진리가 아니라 초대 교회의 사회 상황의 반영이자 자신이 사랑하는 분에게 바치는 성도들의 신앙고백의 언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고백적인 언어들은 다른 구원자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용어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니터는 결과적으로 예수 이외의 신(神)에 이르는 다양한 길들을 인정함으로써 종교다원주의를 수용할 수 있는 신(神) 중심적인 신학을 전개하였다.
III. 한국의 종교다원주의의 역사
한국에서는 1960년대에 기독교 토착화론(土着化論)이 등장하여 전개되다가 1980년대에 종교다원주의로 나아가게 되었다. 토착화론은 1960년대에 연세대 신학대학과 감리교 신학교에서 가르친 윤성범 교수의 ‘효(孝)의 신학’을 중심으로 발아하기 시작하여 1970년대에 유동식, 박봉배, 김광식 교수 등에 의해 개화되었고, 1980년대 초반 변선환 교수의 논문들이 감리교단에서 이단시비에 말려들어가게 되었다.
변선환 감신 교수는 1980년대 중반부터는 토착화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기 시작했고, 1987년에 니터의 ‘오직 예수 이름으로만?’을 번역하여 한국에서 종교다원주의가 적극적으로 논의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런 변선환 교수의 종교 다원주의는 홍정수 교수의 포스트모던신학과 함께 1992년 감리교단의 종교재판을 통해 이단(異端)으로 정죄를 당하게 되었다. 변선환 교수 등을 중심으로 한국에서 전개된 이러한 토착화론과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논의는 한국적 신학을 형성하기 위한 시도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한국선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1984년에 발표했던 ‘타종교와 신학’에서 종교 다원주의를 분명하게 표방하게 되었다. 그는 이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본인에게 주어진 제목은 ‘타종교와 신학’이다. 그러나 타 종교재판을 받은 종교와 관계시켜서 신학을 논한다고 할 때 가장 큰 문제는 타종교를 악마시하거나 저주하는 종교 제국주의(배타주의)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겠으나, 타종교를 ‘복음에의 준비(praeparatio evangelica)’라고 보며 포교하고 변증하려는 성취설(fulfillment theory)도 지양하여야 한다. 종교적 다원사회 속에서 그리스도교는 과거의 개종주의의 입장을 깨끗이 버리고 타종교와 동등한 자리에서 공명한 자세를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중략) 타종교는 서구신학의 관점에서 보게 되는 신학의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목적이며 신학의 객체가 아니라 오히려 주체가 되므로 ‘타종교와 신학’이 아니라 ‘타종교의 신학’이 새로운 주제가 되어야 한다.”
변선환은 기독교가 중심이 되는 개종주의를 버리고 오히려 타종교가 신학의 수단(手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신학의 주체(主體)가 되어야 한다는 종교다원주의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이런 종교다원주의를 위해서는 한국의 토착종교에 대한 서구적 편견, 교회 중심주의 그리고 기독교의 배타적 절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는 이 논문에서 그리스도 중심의 포괄주의를 넘어서 신(神) 중심주의의 종교를 주장하고 있다.
이 무렵에 변선환의 사상을 뒷받침했던 것은 세이지 야기, 마사오 야베 등의 일본인 신학자들 파니카와 존 힉과 폴 니터 등의 이른바 신(神) 중심적 다원주의를 주창하는 신학자들이었으며, 변선환의 신학은 이들의 겉으로 드러난 주장들을 엮어 놓은 일관성 없는 모자이크신학이었다. 1984년에 변선환은 이 논문을 통해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한 이후에 김경재, 길희성 그리고 김승철 교수 등도 적극적으로 종교 다원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김경재는 “종교신학의 중요한 핵심은 지구 인류역사에 존재해 왔고 지금도 현존하는 진실한 세계 종교들은 성서가 증언하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인간종교, 자연종교, 이방종교 심지어 우상종교가 아니라, 유일하시며 진리 자체이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원경륜, 영적 현존의 다양한 형태로 이해하게 된 것이다.”라고 하면서, 폴 틸리히의 상관방법론과 역동적 유형론, ‘가다머’의 지평융합론과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 전환 같은 해석학 이론을 사용하여 일원론적 종교다원주의를 표방하며 한국의 종교신학을 수립하고자 했다.
그는 지금까지의 한국의 종교문화신학을 박형용의 파종모델, 김재준의 발효모델, 서남동의 합류모델, 유동식의 접목모델로 분류하고 유동식의 접목모델을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이런 접목모델을 통해 한국의 종교신학이 가장 긍정적으로 형성될 수 있다고 보면서 WCC의 1990년 ‘바아르 선언’에 기초하여 그리스도 중심에서 신(神) 중심과 영(靈) 중심의 신학의 중심 이동이 가능해졌다고 보았다.
그는 종교신학은 교의학적 방법론과 역사학적 방법론이 아니라 해석학적 방법론에 근거해야 종교가 역사적인 제약을 가질 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재가 해석학적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깨달아 진리 체험에 대하여 개방성을 가지게 된다고 보았다. 그는 서양의 해석학적인 이론들을 비판 없이 도입하여 한국의 종교들에 나타나 있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다양한 영적 현존을 찾아내려고 하는 종교다원주의 신학을 전개하고 있다.
김승철 교수는 가장 해체주의적인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그는 신(神) 중심적인 종교다원주의조차 비판하면서 이것은 그리스도 중심주의를 신(神) 중심주의로 바꾸었을 뿐 모든 종교를 하나로 통일하려는 기본구도를 벗어나지 못하여 다원주의로의 진정한 패러다임의 전이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그는 모든 종교를 그 자체로서 인정하여 일률적으로 다 동등하게 보는 가장 다원적인 종교다원주의의 입장을 취한다. 그는 동양 신학의 정립을 위해서는 서구신학과 문제제기부터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하면서 기존의 서양의 신학체계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동양신학을 위한 아나키즘(anarchism,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지배자가 없는 상태)을 주장한다.
그는 동양신학은 서구신학의 수정판도 아니고 서구신학의 틀 안에서 동양사상을 이용하는 것도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서양과 다른 동양의 장소의 변화에서는 질문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동양신학은 서구신학의 방법론 내지 내용과 관련된 강요에서 벗어나는 아나키즘적인 해체의 길을 가야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새로운 동양신학을 시간이 승리한 서구신학과 달리 장소가 지배하는 동양적인 불교의 개념과 자유를 가져오는 바람으로 표상하여 새로운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대지와 바람이란 메타포(metaphor, 隱喩)를 통한 새로운 시론을 제시한다. 이런 그의 주장은 기독교의 모든 교리들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극단적 해체주의다.
길희성 교수는 2005년 출판된 ‘보살 예수’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보살과 거의 동등 선상에서 비교하고 있다. 그는 기독교의 초자연적인 사실들 즉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과 하나님의 섭리를 초등학교만 나와도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으라고 강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자신도 현대신학의 도움을 입어서 이러한 신앙을 극복하지 못했더라면 기독교를 버렸을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철저히 불교와 기독교는 세계종교라는 동등한 지평에 놓고 양쪽을 융합하려는 시도이다. 기독교를 불교화하고 불교를 기독교화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글에서 두드러진 사실은 기독교의 부정적인 것은 대단히 강조하고 불교는 대단히 이상적인 종교로 그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 윤회설을 기독교가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인생이 한 번의 신앙에 따라서 운명이 결정되는 것은 너무나 가혹한 것이요, 오히려 인생이 윤회하면서 새로운 기회를 주어지는 것이 인간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서강대학교에서 불교학과에서 불교를 가르치면서 불교의 시각에서 기독교를 비판하고 기독교가 불교화 될 수록 참다운 기독교인 것같이 주장하고 있다. 이런 그의 주장은 기독교의 기독교다움과 불교의 불교다움을 완전히 희석시켜 자기 입맛에 맞는 것들을 취사선택하여 얼버무려 놓은 것이다.
IV.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개혁주의의 대응
종교다원주의는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서구신학에서 형성되어 전개되면서 점점 더 과격한 성격을 띠게 되었으며 한국에서는 1960년대의 토착화론이 1980년대에 종교다원주의로 나아가게 되었다.
이런 종교다원주의는 최근 들어 한국에서 현재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가치를 동등하게 인정하는 가치 상대주의와 기존의 것들을 해체하려는 포스트모더니즘과 한국의 토착 종교의 전통과 기독교의 신앙을 조화시키려는 시도 등을 통하여 점차로 확산되어 가고 있다.
이런 종교다원주의 확산을 차단(遮斷)하고 올바른 개혁신학의 전통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작업들이 진행되어야할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종교다원주의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먼저 종교다원주의의 철학적, 신학적인 주장들의 논리적인 문제점들을 드러내는 변증 작업이 철저하게 진행되어야 하겠다.
(1) 종교다원주의의 주장들의 배타성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변증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이런 종교다원주의의 등장에는 사마르타와 파니카를 비롯한 힌두교적인 배경을 가진 기독교인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힌두교는 다양한 신들을 인정하는 다신교인데 이런 힌두교의 입장을 수용한 종교 다원주의는 다원주의를 절대적인 진리로 인정하고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주장하는 기독교의 입장을 배타주의로 비판하고 있다.
종교다원주의자들은 다원주의를 절대화하여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려고 한다. 이 같이 종교다원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다원적인 주장을 절대적이고 배타적인 규범으로 설정하면서도 표면적으로 다원주의가 포괄적이고 매우 유연한 입장인 것처럼 주장한다. 그러므로 종교다원주의자들은 그들의 논리 전개에서 유연성과 포용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입장을 절대화하는 데서 오히려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주장하는 전통적인 기독교인들에 못지않게 배타적이라는 것이 지적되어야 하겠다.
그들은 자신들의 다원주의 입장이 진리(眞理)이므로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주장하는 것은 대단히 편협하고 폐쇄적인 주장이라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다원주의자들의 다원주의의 절대성의 주장이야말로 거짓 진리에 기초한 가장 배타적인 주장이다.
(2) 이런 종교다원주의자들은 그들의 주장 배후에 특정한 철학을 바탕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종교다원주의를 뒷받침하는 철학의 논리적인 약점들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야 하겠다. 종교다원주의자들은 다원성을 실재(reality)에 주어진 기정사실로 믿고 피상적으로 여러 종교들을 비교하고 각 종교들의 교리나 신앙을 다원주의에 맞추어 재해석하고 있으나 과연 그 다원성(多元性)이 참된 것인지를 증명할 길이 없다.
종교다원주의의 입장에서 모든 종교들을 동시에 진리로 만들려면 다원성의 보편성을 추출해야 하나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경험으로부터 그러한 보편성을 추출할 수 없다. 개체들의 진리를 평가하려면 모든 현상들을 초월하는 어떤 절대적인 진리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그 절대적 진리는 다름 아닌 창조주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며 그 계시이다. 이 계시인 성경 말씀을 떠나서 우리는 많은 종교들의 주장들의 진위를 판단할 근거를 전혀 가지지 못하게 된다.
우리가 각 종교들을 비교해볼 수 있지만 각 종교들의 궁극적인 주장의 반위성이 대두될 때 판단할 근거를 상실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계시이자 참된 진리의 성경을 기준으로 종교들의 진위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변선환, 김경재, 김승철 그리고 길희성을 비롯한 한국의 종교신학을 주장하는 신학자들이 비규범적인 종교신학을 전개 하나 어떤 명제의 진위를 평가할 때 가치평가의 기준인 규범이 없으면 올바른 판단이 이루어질 수 없으므로 규범적 종교신학이 되어야 한다.
종교다원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진리에 대하여 규범이 없이 상대주의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다. 상대주의자들은 모든 지식체계나 가치 체계의 타당성을 인정함으로써 비판적 대결과 수용 거부의 의지를 약화시키게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대주의에 근거한 종교다원주의는 모든 종교들의 주장들을 나열하거나 혼합하는 결과만을 가져올 뿐 참다운 진리를 판단할 기준을 제시하지도 못하고 수용해야할 참다운 진리도 제시하지 못하게 된다.
종교다원주의자들은 성경에 근거한 규범적인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비규범적인 그리스도를 주장하나, 이러한 해체주의적인 입장은 철학 안에서도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기존의 규범을 해체하고 진리를 평가하는 분명한 기준을 설정하지 않을 때에 참다운 평가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다. 그러므로 진리를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규준이 설정되는 것이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이처럼 종교다원주의자들은 실체 없는 다원주의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세워놓고 배타적인 주장을 하면서 성경을 진리로 믿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주장하는 입장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것으로 수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진리는 근본적으로 배타적이다. 진리는 진리가 아닌 것에 대하여 배타적이며 그런 배타성이 있을 때 비로써 진리는 올바른 평가기준이 설정될 수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절대성은 양보할 수 없는 기준이다.
(3) 종교다원주의는 가장 핵심적인 주장은 예수님이 유일하고 궁극적인 그리스도라는 것을 부정하는데 있다.
이들은 그리스도는 메시아라는 보통명사이므로 예수님 한 분만으로 제한되지 않고 다양한 그리스도가 있을 수 있다는 보편적 그리스도론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그들의 이성적인 논리에서 추론한 것일 뿐 그들의 주장이 참이라는 것을 판단할 객관적인 근거가 전혀 없다.
그러므로 종교다원주의의 주장들을 무너뜨리려면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입각하여 예수님이 가장 궁극적으로 유일한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정립해야겠다. 그런데 성경은 분명하게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구원받을 만한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고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제시한다.(행 4:12) 이와 함께 종교 다원주의자들이 사용하는 하나님, 그리스도, 구원, 선교 등의 용어가 전통적인 기독교에서 가지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분명하게 밝혀져야 하겠다.
(4) 종교다원주의자들은 19세기의 선교활동이 서양제국주의와 궤를 같이 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개종을 중심으로 하는 선교활동을 제국주의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한다.
물론 서구 기독교의 선교활동이 그들의 제국주의와 궤를 같이 한 측면은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구원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유일성이 확실하다면 개종 이외의 무슨 다른 길이 있는가? 더구나 주님이 부활하신 후에 마지막으로 하신 선교명령을 수행해야 한다면 선교를 제국주의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성경의 진리보다는 현대적인 가치관에 영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5) 종교다원주의는 성경이 기준이 아니라 현대의 유행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과 해석학과 가치상대주의를 근거로 삼고 있다.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에서 언제나 기독교는 새로운 시대에 등장한 여러 가지 지적 풍조에 의해 도전을 받았지만 그러한 도전들을 극복하고 기독교의 생명력을 유지해 왔다. 세속화되고 다원화된 종교 사회 속에서 현재 기독교가 종교다원주의의 거센 도전을 만나고 있지만 우리가 성경의 진리로 무장하고 생명력 있는 신앙생활을 해 나간다면 그러한 도전들은 충분히 극복될 수 있다.
이런 변증적인 자세와 함께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 간의 대화에도 성실하게 임해야 하겠다. 종교 간의 대화 자체를 거부할 때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이러한 자세는 배타적인 입장으로 비판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 간의 대화를 통해 상호이해의 폭을 넓히고 서로에 대한 불필요한 적대감을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성실한 대화를 통해 각자의 정체성을 확인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성경의 가르침대로 상대방의 변화를 기대하는 포괄적이고 변혁주의적인 대화를 진행해야 하겠다.
마지막으로 일반은총의 영역에서 상호협력을 통하여 좋은 열매를 맺는 일들에 협력해야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3.1운동 때에 나라의 독립을 위해 불교와 천도교와 함께 협력한 경우가 있었고, 북한의 기아 문제에 대해 기독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안의 모든 다른 종교 지도자들과의 협력을 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환경문제를 해결하거나 우리나라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증가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성경의 테두리 안에서 타 종교지도자들의 상호협력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나가는 말
종교다원주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체주의와 가치 상대주의 그리고 혼합주의와 민족문화와 종교의 주체성을 강조하려는 민족주의 성향 등과 맞물리면서 한국교회 안에서 확산되어 나갈 개연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종교다원주의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주장하는 기독교는 매우 배타적이고 편협한 신앙을 고수하는 근본주의자들로 비판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혁신학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분명하게 변증하면서 동시에 종교다원주의의 주장들의 철학적이고 논리적인 잘못을 확실하게 드러내야 하겠다. 종교다원주의자들의 논의는 개혁신학과 전혀 다른 종교철학적인 지평에서 전개되기 때문에 그들의 논의가 전개되는 그 지평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분명하게 지적하는 선험적 비판을 수행해야 하겠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성경해석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비판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해야할 선교 사명을 분명하게 제시하는 개혁주의의 설득력 있는 성경해석을 발전시켜 나가야 하겠다. 이와 함께 한국 전통 종교들을 철저하게 연구하여 한국인들의 정신세계의 기초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짐으로써 다종교적인 문화배경을 가진 한국 기독교인들의 가장 깊은 내면적인 세계관을 변혁시키는 작업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글쓴 이 / 이은선(1958.4.10~ , 교수, 목사, 현 안양대학교 역사신학 교수, 신학대학원 원장, 한국복음주의 역사신학회 회장, 한국개혁신학회 협동총무, 칼뱅과 종교개혁연구의 권위자. 서울대학교 문학사(B.A.)역사교육, 서울대학교 교육학석사(M.Ed.), 총신대학교 목회학석사(M.Div.), 총신대학교 신학석사(Th..M.), 총신대학교 신학박사(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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