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행하는 삶 Coram Deo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갈 1:10)

사람들의 가장 큰 욕구 중 하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평판과 평가에 죽고 살 정도로 민감하다. 누가 자신에 대해 좋은 말을 하고 긍정적인 평가를 하면 마음이 우쭐 해 진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해 나쁜 말을 하고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면 마음이 금방 우울해 진다.

16세기 종교개혁을 통해 회복한 진리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뭐라고 하든지 하나님은 자기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사람은 누구나 의인이라 선언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단이 끊임없이 나를 송사한다 할지라도, 율법이 내게 죄책감을 준다 할지라도, 누가 나의 잘못과 허물을 파헤치고 끊임없이 물고 늘어진다 할지라도, 거룩하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완전한 의인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하시고, 받아 주셨다는 것이 바로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稱義)의 진리이다.

이신칭의(以信稱義, Justification)의 이 진리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자세를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전에는 이웃들의 평가에 민감하게 살았다. 친구와 동료들의 평가에 민감한 채로 살았다. 아내와 남편과 형제자매의 평가에 좌지우지되는 내 인생을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 듯  살았다. 그래서 나 자신의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이 다른 사람들의 눈과 입에 의해 결정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은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인간의 평가에 연연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현란한 찬사를 내게 날린다고 해도 그것이 나를 의인으로 만들어 줄 수 없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나를 부정적으로 깎아내려도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 된 나의 정체성을 훼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부정적인 평가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며 회개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긍정적인 평가는 나를 나 되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기회가 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나의 기쁨과 슬픔이, 나의 행복과 불행이 더 이상 좌지우지되지 않게 되었다. 바로 그리스도인의 이런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종교개혁자들은 ‘코람 데오’(coram deo, in the presence of God)를 외쳤다.

여기서 ‘코람 데오’라는 말은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라는 뜻이다. 우리의 모든 삶의 일거수일투족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들의 좋은 평가를 기대하며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평가를 기대하며 행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내가 푸줏간의 주인으로 살든, 광산에서 금을 캐는 광부로 살든,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살든, 가정주부로 살아가든 아무 상관없이 나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사는 삶이라는 것이 개혁자들의 생각이었다.

결국 우리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청중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잘 보이기 위해 애써야할 대상은 결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삶과 행위에 대해 최종적인 평가를 내리는 심판자도 결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받으시고 용납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 구원을 얻으려고 공덕을 쌓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무상의 큰 은총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존귀하신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을 종교개혁자들을 반복해서 강조하였다.

이 ‘코람 데오’의 진리는 종교개혁자들에게 교회의 갱신을 향한 불굴의 의지와 추진력을 제공해 주었다. 개혁자들은 사람들로 인해 지나친 기대에 부풀게 되지도 않았고, 사람들로 인해 지나친 좌절이나 실망을 하지도 않았다. 종교개혁이라는 거룩한 대의를 반대하고 핍박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어도 사람의 반대와 핍박은 바람이 불면 날아갈 수밖에 없는 낙엽과 같은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아무리 반대하고 핍박의 칼날을 간다 할지라도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일이라면 반드시 성취될 것을 믿었던 것이다.

오직 우리의 가장 중요한 절대적인 청중이 되시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과 공의와 자비로 행할 때 하나님의 영광스럽고 거룩하신 뜻이 그같은 삶을 통해 이 땅에 실현될 것을 믿고 확신했던 것이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오늘도 우리에게 필요한 진리가 바로 이 ‘코람 데오’(Coram De)의 삶이다. 청중들이 설교를 지루해 할까 두려워 코메디와 개그 수준으로 끌어내린 설교가 만연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사람들이 내팽개칠까 두려워 철학과 이념을 섞어 불순한 진리를 설교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 시대에  사람을 두려워하지도 말고, 사람에게 잘 보이려 하지도 말고, 오직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기 위해 힘쓰는 ‘코람 데오’(Coram De)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 글쓴 이 / 정성욱 교수(콜로라도 주 덴버신학대학원 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