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끝) 영적승리와 찬양의 기도

제52주일(127-129)     

요절 :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마 6:13)

문 127 : 다 번째 구의 의미는 무엇입니?      

 :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말의 의미는 우리는 너무 미약하여서 잠시라도 스스로 우리를 지킬 수 없으며, 또한 철천지원수인 마귀와 세상과 우리의 육체가        끊임없이 우리를 공격하고 있으므로 주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를 붙드시고 강하게 하셔서 영적투쟁에 패배하지 않고 최후의 완전한 승리를 거둘 때까지 강력하게 원수를 대적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문 128 : 이 기도의 결론부의 의미는 무엇입니?      

 :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의 의미는 우리는 모든 것을 우리의 왕이 되셔서 만물을 지배하는 권능을 가지고 계시며 선한 것은 무엇이든지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고 또한 주실 수 있는 하나님께 간구하며 이 일을 통해서 우리 자신이 영광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이 영원토록 영광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 129 : ‘아멘’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 ‘아멘’이란 이것이 참되고 확실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 지기를 바랍니다.’라는 뜻이며, 내가 기도한 것이 진실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내 마음의 소원 이상으로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이 확실하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설        

그동안 주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 대하여 무엇을 배웠는지 정리할 필요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는 배워야한다는 점이다. 여타 불교를 비롯한 대부분의 종교에서 정성껏 기도하면 다 이루어진다고 가르친다. 기도를 일반적으로 원하는 것이며 위급한 상황에서 구해달라는 외침 정도를 기도라 하겠지만 우리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는 그런 차원에서가 아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점은 기도의 원칙(原則)이다. 기도란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交濟)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즉 기도는 단순히 소원을 아뢰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영적으로 교류를 통하여 함께 교제를 나누는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즉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먼저 하나님을 찾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교제인 것이다. 이러한 주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문은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즉 기원(祈願), 간구(懇求) 그리고 송영(頌榮)이다.

첫째, 기원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 즉 섭리와 통치 그리고 구원 사역의 모든 일을 통하여 이루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이 죄 많은 세상 속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것이다.

둘째, 간구에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죄 많은 세상 속에서 필요한 것들을 구하므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피조물의 모든 부분을 섭리하시고 통치하심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 간구 속에는 일용할 양식, 인간관계 속에서 관계회복(피차의 용서)과 사탄의 유혹과 온갖 죄의 시험에 빠지지 않기를 구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셋째, 송영에서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에 대하여 영광과 찬양을 드리는 것이다.              

1. 시험에 대하여  

문답 제127문에서는 주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여섯 번째 주제를 다룬다. 즉 그 간구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답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이다. 이 간구의 의미는 무엇일까? 요리 문답은 계속하여 그 의미는 “우리는 너무 미약하여서 잠시라도 스스로 우리를 지킬 수 없으며, 또한 철천지원수인 마귀와 세상과 우리의 육체가 끊임없이 우리를 공격하고 있으므로 주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를 붙드시고 강하게 하셔서 영적 투쟁에 패배하지 않고 최후의 완전한 승리를 거둘 때까지 강력하게 원수를 대적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라고 가르친다.

대부분의 성도의 주된 기도는 개인의 일상적인 필요 사항과 희망 사항 그리고 삶의 현장과 상황 속에서 요구되는 건강, 인간관계, 가족 문제, 일용할 양식 등을 주로 기도한다. 그리고 좀 기도의 범위를 넓힌다면 교회와 사회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 등을 포함한다. 그런데 주께서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고 하셨다. 이런 기도를 하라는 말씀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유비무환(有備無患)이란 말이 있다. 즉 미리 대비하면 환란을 겪지 않게 된다는 말인 줄 안다. 우리 주께서 “시험에 들게 하지 말기를 구하라.”는 가르침은 바로 이런 그것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세상 속에서 시험받은 일들이 너무 많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죄를 주관하는 사탄의 강한 영향력으로 인간은 그 누구나 온갖 시험을 겪게 마련이다.

이 세상에 얼마나 유혹과 시험 거리가 얼마나 많이 있는가! 거짓과 위선, 자랑과 과시, 술과 담배, 도박과 마약, 어두움의 세계 가운데서 벌어지는 죄의 양상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경제적 위화감에서 오는 갈등, 정치적 차이에서부터 야기되는 갈등, 종교와 사상 그리고 각종 이념의 차이에서 야기되는 갈등 등 우리네 인생살이에는 온갖 시험과 문제들로 한순간도 평안을 누릴 수가 없다.                

이 모든 상황 가운데서 누구나 시험을 받고 유혹을 받게 된다. 주께서는 이렇게 죄가 가득 찬 세상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시험에 들지 않게’ 구하라고 하셨다. 이 기도는 세상의 악함을 전제로 하고 드리는 기도이다. 직업을 구할 때, 직장 생활을 하면서 그리고 친구들과 교제하면서 시험에 들 수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고, 따르지 않고, 그리고 유혹을 받지 않기를 구하라고 가르친다.

시편 기자는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시 1:1)라고 노래하여 의도적으로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를 차지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자가 복 있는 자라 했다. 이는 모든 죄가 우리의 의지로 악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악한 본성을 억제하지 못함으로 발생하므로 성령의 간섭하심을 구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2. 두 종류의 시험

시험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측정(測定, Test)이고 다른 하나는 유혹(誘惑, Temptation)이다. 헬라어는 같은 단어 ‘페라스모스’(perrasmos)가 사용되어 이해하는 데 문맥이 주요하지만 영어에서는 쉽게 구분된다.

(1) 측정하는 시험

이 시험은 학생이 실력을 측정하기 위하여 테스트(test) 하는 것과 같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측정하시기 위해 이 방법을 택하셨다. 그가 100세 얻은 아들인 이삭을 바치라는 시험이다. 그는 이 시험에 온전한 순종으로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믿음을 증명해 보였다. 그는 테스트(test)를 통과했다. 그 시험을 통과하자 하나님은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라고 아브라함을 인정하셨다.

지금도 하나님은 가끔 우리의 믿음을 측정하신다. 이 시험을 두려워하지 말고 온전히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이유는 마치 이삭을 바치려 한 아브라함에게 양을 미리 준비시켜 주신 것과 같이(창 22장), 하나님은 능히 감당할 믿음을 주시고 또한 피할 길도 마련해 주시기 때문이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2) 유혹하는 시험                    

사탄이 시도하는 유혹(誘惑, (temptation)이다. 아담과 하와는 이 시험인 사탄의 유혹에 빠져 넘어갔다.(창 3:1-6) 사탄은 예수께서 구속 사역을 완수하지 못하도록 사역 초기에 시험했다. 사탄은 아담의 유혹에 성공하므로 죽음의 권세를 행사하는 존재로 두 번째 아담이신 예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유혹했다. 주께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신뢰와 말씀으로 이 유혹의 시험(temptation test)을 통과하셨다. 주께서 이 시험을 이기셨다. 사탄의 유혹과 시험에서 승리하셨다.(마 4:1-10) 

지금도 마귀는 온갖 방법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이 영적 존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죄에 빠지도록 유혹한다. 마귀는 개인의 취향, 습관, 욕망을 이용한다. 돈과 명예와 권력을 소재로 유혹한다. 어떻게 하면 이런 간교한 사단의 유혹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사도 베드로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라며 강력히 경고했다. 시험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항상 깨어서 원수 사탄을 경계해야 한다. 이렇게 영적으로 깨어 있을 때 간교하고 거짓된 마귀의 온갖 유혹과 시험을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다.(요 8:44)

(3) 유혹 상황의 원인에 대하여

성도들은 쉽게 “하나님은 모든 것을 섭리하시고 주관하시니까 유혹 상황도 허락하신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자신이 유혹받은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려 한다. 하와가 사탄의 유혹을 받은 것이 하나님의 탓이라고 하는 것이 바른 것인가? 아니면 미리 말씀으로 명령하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은 것이 잘못인가? 아담의 변명을 그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며 인간의 타락상을 여지없지 드러냈다. 그는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 3:12)라고 변명했다. 아담은 사탄의 시험에서 패하므로 죄로 인하여 모든 인간은 평생 시험에 빠져 살게 되었다. 그런데 간교한 사탄을 말씀으로 물리친 주께서는 우리에게 간교한 사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할 것을 가르치신 것이다.

3. 사탄의 시험을 이기려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사탄의 시험을 이길 수 있는가? 여섯 번째 기도에서 ‘시험에 빠지지 않는 문제’와 ‘악으로부터의 구원 문제’는 밀접한 관계가 있기에 악한 존재 즉 사탄의 존재를 의식하고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치신 것이다.          

(1)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해야 한다.

자존심과 자긍심에 사로잡혀 교만할 때 사탄의 시험에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6:12 이하에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한 것이다.”라고 했다. 교만은 항상 패망(敗亡)의 선봉(先鋒)이다.(잠 18:12)

(2)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영적 전투에서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배,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와 같은 방어적(防禦的) 무장도 좋지만 사탄과의 사움에는 공격(攻擊) 무기가 더 중요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께서 무장하여 사탄을 물리치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도는 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해야 한다.(엡 6:14-17)

(3)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한다.

적의 동태(動態)를 잘 살피고 내부적으로 경계를 확실하게 하는 것이 기본적인 전쟁 수칙이듯이 영적 전투에서 기도는 영적 각성(覺醒)과 긴장(緊張)이 절대적인 수칙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뜻이며(살젼 5:17), 주께서도 제자들에게 강조하신 바이다. 사도 바울도 같은 원리를 적용하여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엡 6:18)라고 교훈했다.

4. 성도의 찬양은 영성의 척도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마지막 부분은 송영(頌榮, Doxology)이다.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마 6:13b) 문답 128문에서 이 결론 부분의 의미를 “모든 것을 우리의 왕이 되셔서 만물을 지배하는 권능을 가지고 계시며 선한 것은 무엇이든지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고 또한 주실 수 있는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며, 이 일을 통해서 우리 자신이 영광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이 영원토록 영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가르친다.

주께서 마지막 부분에 송영으로 마치도록 하신 것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경배하고 간절히 구한 후에 드리는 신실한 고백이기 때문이다. 기도를 진실하게 그리고 간절히 했다면 그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온 마음으로 찬양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기에 이 찬양은 성도의 영성을 가름할 수 있는 기준이라 하겠다.                    

(1) 기도의 근거

한글 번역에서는 한자(漢字)의  ‘대개’(大蓋)로 시작 된다. 그 뜻은 ‘일의 원칙으로 말하자면’, 혹은 ‘전체적으로 말하자면’이라는 의미다. 영어에서는 ‘왜냐하면’의 뜻으로 ‘for’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 말은 “앞에서 구한 모든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과 권세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라는 고백과 함께 하나님께 찬송을 드리는 것이다.

주님은 우리 자신을 위한 세 가지 간구 즉 ‘일용할 양식’, ‘삶 속에서의 사죄’, ‘시험에 들이 않고 악에서의 구원’을 구한 후에 기도를 들어주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과 권세를 기원(祈願)하라고 가르치셨다. 이는 간구의 근거와 이유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통치자, 보호자, 공급자 그리고 구원자이심을 고백하며 기도할 것을 뜻한다. 그 아버지는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며,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서 악에 빠지지 않고 보호하시며, 구원하실 완벽한 능력의 하나님이시다. 그것은 그분의 존재, 권세 그리고 나라가 영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나라 백성인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풍부함과 참된 안식 그리고 평안과 담대함을 유지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니라.”(사 43:7)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사 43:15)라고 여호와 하나님을 전파했다.            

(2) 기도는 찬양

우리 하나님은 영원히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시다. 그가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바로 피조물로부터 영광을 얻으시기 위함이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문에서 이 사실을 잘 가르치고 있음을 기억한다. 신앙고백 소요리문답 제1문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이며, 답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히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라고 가르친다.

성도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통치와 능력을 믿는다면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과 그 나라와 영광을 찬양함이 마땅하기에 주께서는 이 말씀으로 기도를 마치게 하셨다. 이 점은 구약의 사무엘의 모친 한나의 기도 가운데 잘 나타나고 있다. 한나는 기도의 응답받아 사무엘을 얻은 후에 그녀가 인식하고 있는 하나님의 존재와 능력과 권세를 마음껏 표현하며 찬양했음을 볼 수 있다.(삼상 2:1b-10)

5. 삼위 하나님과 성도의 구원

주님이 가르쳐 주신 이 기도를 통해 구원이 삼위 하나님에게서 온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그것은 삼위 하나님께서 영광 가운데 조화롭게 계시며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1)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

이사야는 이사야 6:1-3에서 성전에서 높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목격했다. 그가 본 하나님은 성전 가득히 찬 옷자락으로 여섯 날개를 가진 천사가 얼굴과 발을 가리고 날면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하며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함을 찬양하는 보좌에 영광 가운데 앉으신 광경이었다.            

사도 요한도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하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 지로다. 아멘’하더라.”(계 7:9-12)라며 보좌에 앉으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전해 주었다.

여기서 영광된 여호와 하나님의 보좌와 통치는 성도의 구원과 직결됨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주 예수께서 이미 말씀해 주신 사실을 통하여 확인된다.

(2) 구원을 이루시는 삼위 하나님의 영광

주님은 공생애 사역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셨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요 12:28) 주께서는 장차 구속 사역을 완성하시고 승천하신 후 성령님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시며 삼위 하나님의 공동사역으로 성도의 구원이 이루어짐을 강조하여 가르치셨다.

이는 성령 하나님께서도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속의 진리를 성도들에게 적용하심으로 구원을 완성하셔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는 것이다. 이 세세한 과정을 주께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요 16:13,14)라고 가르치셨다.

이렇게 삼위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복음을 통하여 밝히 드러난다. 즉 예수께서 알리신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삼위 하나님의 사역인 것이다. 그러기에 성도들은 삼위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찬양할 수밖에 없다. 초대교회 성도도 구속 사역을 완성하신 주 예수께 항상 영광 돌렸다.(참고 빌 2:9-11)

(3)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교회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구속의 진리인 복음을 온전히 믿고 나갈 때 어떤 결론에 도달할 것인가? 바울은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7,18)이라고 성도의 구원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된 몸과 같이 변하게 될 것을 가르쳤다.              

그는 또한 빌립보서 3:20,21에서 분명하게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라고 선언했다.

놀라운 구원의 비밀이 복음 속에 감추어져 있다. 주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드리며 이 구원의 비밀을 확신하고 삼위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원을 찬양하도록 가르쳐 주신 기도를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6.

문답 제129문에서는 주기도문에서 마지막 단어인 ‘아멘’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가르친다. ‘아멘’이란 “이것이 참되고 확실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라는 의미가 있다. 이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그린 기도가 진실하고 확실하며 참으로 응답되기를 바라는 마음의 소원 이상으로 하나님은 내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이 확실하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성도가 드리는 모든 기도는 이 ‘아멘’이라는 말로 마친다. 또한 예수께서는 당신의 이름으로 기도할 것을 허용해 주셨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 14:13,14) 

이 얼마나 우리에게 베푸시는 주님의 놀라운 축복인가! 성도가 기도할 때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고 마지막으로 ‘아멘!’하는 것이다. 즉 거짓 없이 기도하고, 고백적으로 기도하고, 확신 가운데 기도하여 예수의 이름이 보증하는 가운데 ‘아멘!’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주께서는 이렇게 기도를 가르치셨다.                

결론

기도란 그저 하늘 아버지께 소원을 아뢰고, 희망 사항의 성취를 구하며 그리고 위급 시에 구원을 구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며 찬양과 간구를 드리며 대화하는 영적 교제다. 그러기에 성도는 우리 주께서 이루신 놀라운 구속의 은혜를 잊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기도에 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유는 기도로 하나님께 참된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은 구원의 핵심이기 때문이다.(눅 17:15-19)

우리 주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원리와 개념 그리고 내용을 숙지하여 하나의 종교적인 형식으로 중언부언하지 말고 진실한 고백과 찬양 그리고 간청으로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확신하고 기도에 힘쓰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글쓴 이 / 박병은 목사(덴버 둘로스장로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