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44) 제1계명 예배의 대상

아브라함의 믿음의 중심은 하나님 절대주권이었다.

                   

34 주일(문 94,95) – Ⅱ  

요절 : 너는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 20:3)

문 94 : 하나님은 제1계명에서 무엇을 요구하십니까?  

 : 나는 내 영혼의 구원을 사랑하고 또한 그것이 매우 귀하기에 나는 온갖 우상 숭배, 마술과 점치는 일, 미신, 성인에게 기원, 다른 피조물에게 기도하는 것도 피하고 멀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만을 바르게 인지하고, 그 만을 신뢰해야 하며 모든 겸손과 인내로 그 분께만 복종하고, 그 분께로부터 만 모든  좋은 것을 기대하며, 나의 온 마음을 다하여 그 분만을 사랑하며 경외하며 섬겨야 합니다. 그리하여 나는 그 분의 뜻에 거스리는  그 어떤 작은 것보다 모든 피조물을 버리고 포기합니다.

문 95 : 무엇이 우상숭배입니까?

 : 우상숭배란 말씀으로 자신을 계시해 주신 유일하신 참 하나님 대신에 혹은 하나님과 같이 신뢰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을 고안하여 소유하는 것입니다.  

1. 십계명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

십계명은 애급에서 430년 간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세를 세워 놀라운 이적과 기사로 출애굽 시키신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시내산 아래에 모으시고 모세를 산 위로 부르셔서 주신 법이다. 모세는 이것을 십계명 서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나는 너를 애급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 로라.”(출 20:2) 

이것은 십계명의 저자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임을 분명히 하신 말씀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에 따라 친히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는 주체가 되신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나라 백성들에게 주신 헌법으로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다. 즉 십계명 준수는 성도의 본분이다.

창조주(主)시며 구속주(主)이신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비참한 종의 상태를 아시고 친히 찾아 오셔서 구원해 주신 구원자 하나님이시다. 모세는 당시의 상황을 “여러 해 후에 애급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출 2:23-25)라고 설명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은 그저 통치만 하시고 경배만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 자기 백성을 돌아보시고 아시고 들으시고 기억하사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심을 밝혔다. 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시고 시내산 밑에 모으시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며 그에 합당한 헌법을 주신 것이다.

한편 모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십계명을 받을 당시의 상황을 “너희가 가까이 나아와서 산 아래에 서니 그 산에 불이 붙어 불길이 충천하고 어둠과 구름과 흑암이 덮였는데 여호와께서 불길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되 음성뿐이므로 너희가 그 말소리만 듣고 형상은 보지 못하였느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언약을 너희에게 반포하시고 너희에게 지키라 명령하셨으니 곧 십계명이며 두 돌 판에 친히 쓰신 것이라.”(신 4:11-13)라고 설명하면서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빛과 어두움 속에서 임재하시고 말씀하신 것임을 밝히고 이 말씀은 반드시 백성들이 지켜야 하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었음을 강조했다.  

2. 십계명의 구분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를 시내산 위로 불러 올리셔서 40 주야(晝夜)를  금식을 하게 하신 후 십계명을 친히 불로 두 개의 돌 판에 새겨주셨다.(출 34:28) 어떤 사람들은 두개의 돌 판 중 한 돌 판에는 1-4 계명을 또 다른 돌 판에는 5-10 계명이 새겨져 있다고 이해한다. 그러나 어떤 성경학자들은 이 돌 판들이 두 개가 꼭 같은 것으로 각각의 돌 판에 10계명을 새겨주셨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언약의 당사자들이 언약을 체결한 후 각자 하나씩 갖는 것이 풍습이기에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간의 언약을 체결하는 차원에서 동일한 돌 판을 두 개 만들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 10계명은 크게 둘로 구분된다.

  •  1-4계명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준수해야 할 법들로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며 섬겨야 할지를 가르치고 있다.
  • 5-10계명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떠한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살아가야 할지를 명하고 있다.(신 4:13)

3. 십계명과 자유

구약의 하나님은 흔히 무서운 하나님 혹은 엄격하신 하나님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십계명 서론은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왜곡과 선입견을 해소시켜 주기에 충분하다. 여호와 하나님은 무서운 심판의 하나님이 아니라 구원의 하나님이심에 그 초점이 있다. 하나님은 죄로 인하여 비참 가운데 빠져 있는 우리의 처지를 외면하고 그냥 묵과하지 않으시고 친히 하늘로부터 이 땅에 내려오시고 인간 역사 속에 개입하셔서 인도해 주신 구원의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은 구원받은 백성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법을 주셨다. 그것이 바로 십계명이다. 그런데 이 법은 구속이 아니라 법을 지킴으로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이 법은 백성들로 하여금 참된 자유를 누리게 하는 복된 규율인 것이다. 이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누리게 되는 자유와 행복을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수여하신 것이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은혜로운 언약 안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임을 깨닫게 한다.

야고보 선생은 율법이 우리로 하여금 자유하게 함을 알고 그 율법에 따른 참된 순종의 삶이 얼마나 우리로 하여금 자유와 복을 누리게 하는 지를 이렇게 강조하였다.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약 1:25)

4. 제1계명의 요구

제1계명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출 20:3)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출애굽 시켜 자유인이 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첫 계명이다. 요리문답은 아주 구체적으로 제1계명을 이해하고 준수해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이 계명은 구원에 있어서 가장 핵심 사항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인식(認識)으로부터 출발한다. 즉 구원자 하나님을 바르게 인식하고 그 분께서 요구하는바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을 섬길 것을 명령하신 것이다. 이는 마치 결혼 관계에 있어서 가장 기초가 되는 중요한 것이 서로 간의 언약을 지켜 스스로 자신의 정조를 지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인격과 학식과 성장 배경을 가지고 세상적인 직위가 높고 모든 일을 해결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는 자라 하더라도 부부간의 지켜야할 대의를 저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며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 한다면 그것은 결코 결혼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 점에서 부부간의 행복과 성공은 서로 간에 맺은 언약을 잘 지킬 때 가능한 것이다.

(1) 내 영혼 구원의 중요성 때문에

요리문답은 이 차원에서 “내 영혼의 구원과 복이 나에게 매우 귀한 것이기 때문에 나는 온갖 우상 숭배, 마술, 점치는 일과 미신, 성인과 다른 피조물에게 기도하는 것을 피하고 멀리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는 남편과 맺은 언약을 잘 지키는 것이 아내에게 있어서 가장 행복의 근거가 되어 가장 중요하듯이 94문은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는 구원이 죄 가운데 살아가는 죄인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행복의 근거가 된다고 가르친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들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와 사랑의 표현으로 “다른 신을 섬기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며 사랑하겠다.”고 고백하는 것이 십계명의 가장 기본이 되는 원리인 것이다.

하나님이 애급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으로 자유를 허락하시고 그들에게 십계명을 주심으로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명하신 것이 당연하듯이 오늘의 우리 또한 죄악과 짝하여 살던 우리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하시고 자유를 주신 하나님이시기에 그 하나님께서 먼저 자신만을 섬길 것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 죄인들은 여전히 하나님만을 섬기지 못하고 있음도 사실이다. 이에 제1계명은 이 점을 지적하며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길 것을 요구하신 것이다.

(2) 우상의 의미와 그 배후 세력을 의식해야

제1계명은 우상숭배를 금하고 있다. 우상숭배란 ‘피조물을 조물주 보다 더 섬기는 것’이다.(롬 1:25)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만물 속에 당신의 존재를 분명하게 나타내셨는데 사람들은 그 하나님의 존재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오히려 그 피조물 자체에 무슨 신령한 것이 있다고 착각하고 그 피조물을 하나님으로 대치하여 섬기는 일 즉 그것이 우상숭배로 나타난 것이다.

사도 바울은 우상숭배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 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 1:20-23)

이처럼 우상숭배는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는 것’으로 요리문답은 ‘자신을 계시해 주신 유일하신 참 하나님 대신에 혹은 하나님과 같이 신뢰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을 고안하여 소유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요리문답이 나열하듯이 ‘마술, 미신, 성자에게 기도함, 하나님의 피조물인 해, 달 별, 바위, 산, 나무, 바다 등등을 향하여 비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형태의 타락상은 일련의 종교적 의식들로 포장하여 참된 창조주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못할 때 나타나는 타락한 모습이다. 이러한 인간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은 당연히 심판하실 수밖에 없으셔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던 것’이다.(롬 1:24-25a) 이 같은 우상숭배는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인간들 속에서 역사하는 악한 영의 준동(蠢動)의 결과로 피조물이 하나님의 형상을 버리고 헛된 형상으로 만들어 섬기는 것이다.

그러기에 참으로 하나님만을 섬긴다는 것은 피조물이 그 주인 되시는 창조주를 바르게 아는 것이다. 문제는 죄로 인하여 타락한 자들이  파괴된 하나님의 형상을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금 회복하는가 하는 점이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구원의 진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 4:4) 즉 사탄은 세상을 주관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바른 구원의 도리인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이 그 빛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방해함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왜곡되게 보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제1계명은 복음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다시금 깨닫고 잃었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주인 되시는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시오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알고, 믿고, 의지하고 그리고 섬기는 것을 의미한다.

(3)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가르침은 ‘어떻게 하라.’(how to do)라는 방법론에 집중한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가르침은 방법에 있지 않다. 하나님의 가르침은 ‘어떤 사람이 되라.’(to be)에 중심이 있다. 주 예수께서는 이 진리에 대한 핵심적인 가르침을 주셨다.

 “그 중에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 22:35-40) 

이 말씀에서 보듯이 예수님의 교훈의 중심은 그 어떤 방법에 있지 않고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함에 있다.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 어떤 방법으로 든 하나님을 마음 깊이 사랑함을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드러내게 마련이다.

5. 현대의 우상숭배

우상숭배란 무엇인가? 우상숭배는 하나님 대신 다른 것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그 것을 하나님 보다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더 중요하게 여겨 그것을 섬기는 것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그것의 형상(形象)을 만들어 신(神)이라고 여기고 섬기는 행위를 뜻한다.

하박국을 비롯한 구약의 여러 선지자들은 다음과 같이 우상에 대해 재미있게 설명했다. “새긴 우상은 그 새겨 만든 자에게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스승이라. 만든 자가 이 말하지 못하는 우상을 의지하니 무엇이 유익하겠느냐?”(합 2:18) “그들은 다 무지하고 어리석은 것이니 우상의 도는 나무뿐이라.”(렘 10:8) “사람마다 우준하고 무식하도다. 금장색마다 자기의 조각한 신상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것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 (렘 10:14) 

그렇다! 인간의 빚어 만든 그 어떤 형상도 또한 아무리 크고 화려하고 값 비싸게 장식하여 세운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들은 무용지물이다. 왜냐하면 그 속에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이런 우상을 섬기는 백성들에게 그들의 무지를 지적하며 경고했던 것이다. 이처럼 우상숭배란 어떤 식으로든 종교적인 행위로 나타나는 듯싶지만 실은 마음의 문제이며 바른 진리에 관한 지식의 문제이다.

사도 바울은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한다.”고 경고했고(엡 5: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 3:5) 라고 철저하게 우상 숭배를 배척할 것을 가르쳤다.

옛날에는 어떤 형태를 갖춘 다른 형상을 지닌 신(神)을 섬기는 것으로 그 행위가 분명히 드러나 바른 진리에 대한 지식으로 교정이 가능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우리 속에 창조주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고 의지하고 주장하는 것이 자리 잡고 있지만 이것의 실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가시적이 아닌 비가시적인 우상을 오늘날 현대인들이 하나님 대신하여 섬기고 있다.

이처럼 현대인들에게 있는 우상은 바로 자기 자신(自身)이며 돈과 권력과 장수(長壽) 그리고 부귀이다. 이러한 것들을 하나님 보다 더 섬기는 자들에게는 구원에서 제외되는 위험이 따르게 될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미 이 점을 지적하시며 경계하셨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輕, 가벼울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눅 16:13) 

결 론

현대인들의 우상은 바로 재물이며 세상쾌락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경고하고 있다.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요일 5:21) 과연 우리는 어떻게 우상을 멀리 할 수 있을까? 먼저 우리 자신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聖殿)으로써 합당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우리의 심령 속에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거주하시며 통치하셔야 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의 경고와 권면을 들어보자.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하셨느니라.”(고후 6:16) 즉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고백하는 믿음은 곧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고백이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런 바른 고백을 하는 자 가운데 거하시며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다.

과연 오늘날 이런 바른 신앙고백 가운데 하나님이 명령하신 제1계명을 온전히 준수하는 자들이 얼마나 될까? 심히 우려스럽다. 정말로 현재 한국교회 성도들은 사도 요한이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는 다음의 말씀을 심각하게 듣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의 안과 아버지의 안에 거하리라.” (요일 2:22-24) 

간절히 바라기는 우리 모두 예수 안에서 참된 계명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을 고백하여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글쓴 이 / 박병은 목사(덴버 둘로스장로교회 담임)  < 다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