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참된 회개와 선행(善行)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

(善行)제 33 주일 (문 88-91)

요절 :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함이니라.(롬 6:4,5)

문 88 : 사람이 참으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회개는 몇 가지로 구성됩니까?

답 :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소생하는 두 가지입니다.

문 89 : 옛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 하나님을 분노케 한 우리의 죄를 마음 깊이 슬퍼하고 그 죄를더욱 더 미워하고 그 죄로부터 적극적으로 피하는 것입니다.

문 90 : 새 사람으로 소생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안에서 전심으로 기쁨을 누리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모든 선한 일을 행하며 사는 것을 사랑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문 91 : 선한 일은 무엇입니까? 답 : 우리 자신 생각이나 사람의 계명에 근거한 것들을 따라 하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기위하여 참된 믿음으로 행한 것만을 말합니다. 지난 32주의 주제는 ‘회개와 그에 따른 행실’ 즉 선행에 관한 것이다. 89-90문항에서는 ‘회개’를 다루고 91문에서는 ‘선행’을 다룬다.

1.성도가 되는 필수 여정으로서의 회개

(1) 바른 신앙고백이 필수

성도가 된다는 말은 어떠한 의미인가? 어떻게 하면 성도가 되는가? 교회에 나오면 성도가 되는가? 교회의 직분을 맡으면 성도가 되는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예수를 믿어야 성도가 된다.

예수를 믿는 다는 말은 또 어떤 의미인가? 예수께서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나를 구속(救贖) 해 주셨음을 믿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친히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내 죄를 사해 주심과 이를 믿음으로 나를 자녀로 삼아주셨음을 확신하고 그 예수를 나의 구주이시며 왕이심을 고백하는 것이다. 성도가 되는 과정을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설명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이것은 모든 성도는 성령께서 그의 심령 속에 역사하셔서 그 중심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주님이심을 고백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적시한 것이다. 이러한 일은 실제로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에게 일어났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6,17) 즉 바른 신앙고백은 아버지의 영곧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이루어지는 과정인 것이다.

누구든지 반드시 이 과정을 거쳐야만 성도로 태어나게 된다. 이러 과정을 거쳐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자신의 믿음을 공인하고 천명할 때 “그는 구원받았다!”, “그는 예수를 영접했다!”, “그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라고 말한다. 물론 이때 사람마다 다른 그만의 독특한 모습의 과정이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과격한 과정을 거치지만 어떤 사람은 매우 서서히 변화되어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여기서 문제는 어떻게 그 과정을 거치든 간에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이 과정에서 분명한 자아 의식적 신앙고백이 있어야 된다는 점이다.

(2) 회개의 뜻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나타나게 되는 자아의식에는 회개(悔改) 또는 회심(悔心)이라는 의식적 과정을 거치게 된다. 예수께서 말씀해 주신 비유에서 그 과정을 잘 알 수 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하리라.’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 가니라.”(눅 15:17-20a)

우리는 이 ‘탕자의 비유’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여기서 탕자가 보여준 전(前) 행동이 바로 회개(悔改, repentance)이다. 회개란 말은 헬라어로 ‘메타노에오’(metanoeo)라는 말로 그 뜻은 ‘가던 방향을 완전히 180도 반대 방향으로 전환하여 나가는 행위’ 즉 turning back의 행동을 의미한다. 이는 이제까지 갖고 있던 생각과 의식을 바꾸어 지금까지의 행동양식까지 변화시켜 그 바뀐 의식과 생각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과 길로 옮겨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탕자가 그렇게 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참된 회개다. 한편 이 회개란 말은 회심(悔心, Conversion)이라고도 하나 회개란 말이 좀 더 포괄적이고 구체적인 행동까지 포함하는 의미를 갖는다.

(3) 회개의 과정

진정한 회개는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는 지를 살펴보자. 앞서예로 든 탕자의 비유에서 적절한 회개의 과정을 찾아볼 수 있다

. ‘스스로 돌이켜’ – 깊은 자기 성찰(省察)

먼저 탕자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즉 자신의 고통스러운 처지에 대한 깊은 회의가 있었다.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행위를 통해 나타난 현실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이 있었다. 여기서 회개의 첫 과정이 드러나는 데 이제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전제되는것이 회개의 첫 관문이다. 이때 자신의 삶과 자기라는 존재감에 대한 깊은 점검과 평가를 통하여 깊은 탄식과 좌절감을 갖게 된다. 이는 존 번연(John Bunyan, 1628-1688)이 지은 ‘천로역정’(天路歷程, Pilgrim Progress, 1678)에서 주인공 기독도가 이 문제에 빠져 상당한 기간을 고민하는 과정으로 잘 나타나 있다.

.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 인정(認定)

이런 절망감에 빠진 그는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행위에 대하여 깊은 후회와 함께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분명하게 인정(認定)하게 된다. 회개에 있어서 이 과정이 참으로 귀하다. 단순한 뉘우침 정도가 아니라 뉘우침과 함께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고 받아드리는 진실한 과정이 수반될 때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 질 수 있다고 하겠다.

. ‘내가 일어나 …하리라!’ – 결단(決斷)

자신의 과거의 행위 현재의 형편 그리고 장래에 대한 우려 등등을 종합하여 스스로 어떤 행동에 옮기기로 결단(決斷)을 한다. 탕자는 이 과정을 철저하게 점검하여 결론을 내렸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깊은 동경함이 있었다. 이는 죄인이 하나님 진리의 말씀에 대한 확실한 점검과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살피는것을 전제로 하고 그 내용에 대한 확신 가운데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기로 결심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러한 결심과 결단의 단계를 통해서만 온전한 구원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 ‘이에 일어나’ – 결행(決行)

모든 상황을 점검하고 종합하여 내린 결론과 결단에 따른 바를 실행에 옮기는 것을 의미한다. 탕자의 경우에 있어서 이러한 네 단계를 종합하여 회개라 하겠다.

종합해 보면 회개란 단순히 반성, 후회, 고민의 단계를 넘어오던 길에서부터 180도 완전히 방향을 바꾸어 되돌아가는 전(全) 과정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동기를 부여하고, 자극하고, 인도하며 간섭하여 결단하게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 하나님이시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진정한회개는 옛사람을 미워하고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현상이 일어난다.

(4) 말씀을 통해 회개의 역사를 이루시는 성령 하나님

이 과정에서 가장 우선적인 과정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그 이유는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인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하셨고(요 3:3,5) 베드로 사도는 성도의 거듭남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짐을 강조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 즉 참된 회개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이루시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인 것이다.

이렇게 예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어주셨음을 말씀을 통해 알게 되고 믿게 될 때 비로써 이를 근거로 세례(洗禮) 받을 자격을 얻게 된다. 이런 사실을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 6:4,5)

이 말씀에서 확인되듯이 참된 회개에는 반드시 그에 따른 어떤 구체적인 행위가 수반되게 마련이다. 이는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고백함으로 참으로 회개하는 자의 마음을 변화시키시기 때문이다. 그 결과 회개한 자의 의식(意識)과 생각이 변화되게 되고 그 변화는 그의 삶속에서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렇게 변화되는 것이 참된 회개로 인하여 나타나는 것이며 이 사람은 그 과정으로 통해 놀라운 영적인 체험 즉 마음이 변하고 삶의 변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이 점을 강조하여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1-24)고 명령했다.

이렇게 회개하여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에게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골 3:5-10)라고 규정하며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변화
된 모습을 행동으로 보일 것을 강조했다. 이 점에서 예수 안에서 참된회개를 한 자는 의식의 변화와 함께 삶 즉 생활의 변화가 수반된다.

여기에는 단호한 결단이 수반되는 것은 당연하다. 사도 바울은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 5:7)고 진정한 회개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으심으로 인하여 이루어진 것임을 강조하며 묵은 누룩 즉 옛사람의 의식과 생각 그리고 삶 전체를 바꿀 것을 명했다.

한편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고려해야할 점이 있다. 예수 안에서 참된 고민과 근심을 하며 깊이 자신을 성찰하게 될 때 성령께서는 그러한 고민과 근심을 바로 회개로 직결시키시어 그가 죄를 자복하고 참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되는 놀라운 영적 변화를 체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 7:10)라고 지적한 바울의 말씀은 진리이다.

이는 바로 예수를 은(銀) 30에 팔아넘긴 가룟 유다와 예수를 저주하며 십자가에 처형되어야 마땅하다며 3번씩이나 그는 부인했던 사도 베드로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가룟 유다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깊은 죄책감에 사로 잡혀 결국 자살했다. 그러나 베드로는 성령의 역사로 신앙고백 가운데 자신의 실수와 한계점을 인정하고 주님의 말씀에 대한 깊은 성찰(막 14:72)로 인하여 참된 회개를 하게 되고 이를 통해 다시금 예수의 제자로서 사명을 감당하는 자가 되었다.

2. 옛사람이 죽는다는 의미

질문 89은 옛사람이 죽는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이제까지 살아온바 죄에 대하여 마음 깊이 후회하며 미워하며 철저한 결별을 선언하여 새로운 생활을 살아야 하겠다는 강렬한 의식을 갖는 것을 뜻한다. 그는 이러한 의식의 전환을 통하여 이전에 죄를 지으며 살았던 생활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치관과 원리로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살아가는 변화를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기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식은 바로 적극적으로 그리고 단호하게 옛 자신과 싸움을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대처하여 싸워 나아가려는 변화된 강력한 의식이다. 이러한 의식을 갖고 행동에 옮기려는 것은 저절로 될 수 없다. 그 속에는 의식적으로 사고하고 고민하며 결단하는 구체적인 과정이 따르게 된다. 이는 사도 바울이 지적한 것처럼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12-14)

옛사람을 벗는 것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의식하고 자신의 옛 생활을 점검하여 새로운 삶으로 살려는 강렬한 각오와 함께 영적, 정신적인 특별한 경험을 통하여 새로운 삶으로의 결단을 실행에 옮기려는 엄청난 영적 의식의 변화를 수반하게 된다. 이 과정이 바로 옛사람은 죽고 옛사람의 전체를 변화시켜 새로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게 하는 것이다.

3. 새사람이 된다는 의미

회개의 과정에 있어서 옛사람을 벗어 버림이 소극적이라면 새사람을 입는 것은 적극적이라 하겠다. 이는 자신이 옛적의 모습을 마음으로부터 싫어하고 하나님의 온전함을 추구하여 새사람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열망으로부터 시작된다.

물론 이런 마음은 성령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결단을 통하여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으려는 사람은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고자 힘쓰며(롬 5:1),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의 삶을 추구하고(롬 14:17), 모든 삶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을 추구하려하게 마련이다. 사도 바울은 이런 새로운 삶을 추구하는 하나님 나라 백성에게 나타나는 아름다운 덕목으로 다음과 같은 것임을 밝혔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 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롬 14:17,18)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즉 새사람이 된다는 것은 성령 하나님의 역사로 변화되어 하나님 나라 백성다운 삶의 모습을 아름답게 구현해 나가는 자임을 의미한다.

4. 참된 선행

문 91에서 말하는 ‘선행’(善行)이란 윤리적으로 규정하는 착한 행동 혹은 법에서 말하는 선한 기준에 따른 행동을 의미하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기준의 선행도 포함되긴 하겠지만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 중심(기준)의 선한 행위를 의미한다. 이는 믿음에 의하여 하나님 말씀의 원리에 따른 순종을 기준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행동이다. 또 그러한 선행은 사람을 위하여 사람의 영광을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구체적으로 자신을 말씀에 헌신하는 행위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때 이러한 선행은 어떤 경우에는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수준과 상식과 경험에 따르는 것도 아니며 어떤 관습과 전통의 기준에 따라 행하지 않는다. 오직 참된 선행은 성령 하나님께서 말씀의 원리로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행하는 것이다. 오늘날 이러한 선행을 교회 속에서 찾아보기가 쉽지 않은 것은 깊이 고민해야 할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오늘날 성도와 교회 속에서 참된 회개의 역사가 찾아보기 힘든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결 론

초대교회의 위대한 성 어거스틴(St. Augustinus, 354-430)은 온갖 인생의 즐거움을 추구하여 영위하고 그 즐거움을 모두 누려보았으나 만족이 없었다. 마침내 실패한 인생으로 병든 몸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와 있을 때 창밖에서 들려오는 아이들 노래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것은 당시 유년주일학교서 부른 ‘꺼내어 읽으라!’(Take it and Read it!)는 찬송을 부르는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듣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성경을 펴고 다음의 구절을 읽고 회개했다. “또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1-14)

어거스틴은 이 구절에 감전되었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로 참된 회 개를 하게 되었고 그 후 그의 일생은 놀라운 성도의 거룩한 삶으로 이 어져 교회 역사에 있어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성도의 삶을 보여주 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 이러한 삶의 변화가 나타나는 참된 회개를 경험하는 성도가 모두 되길 소원한다.(*) 글쓴 이 / 박병은 목사(덴버 둘로스장로교 회 담임) < 다음에 계속